신과 과학, 인간의 오만함에 대하여

글의 완성도가 떨어지므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권합니다. -_-;
박노자는 자신의 책 '우리를 위한 국가는 없다'에서 '인격신을 믿는 문화가 적은 국가에서는 무신론이 유행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굳이 인격신이 아니더라도 삶 속에서 어떤 신, 혹은 모든 것을 망라하는 규칙이나 통일성의 존재를 믿고 살게 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불교나 힌두교 그리고 多神을 숭앙하는 많은 종교들이 그런 세계관을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창조론을 배격하고 과학적이고 입증 가능한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는 무신론은 이런 '무인격신'의 존재에 '그런 신은 없다'는 것을 입증할 필요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런 신은 지하철 안에서 시끄럽게 전도를 하게 해서 우리를 귀찮게 하지는 않으니까. 무신론자들의 상징이자 (인격)신을 패러디하기 위해 만들어진 스파게티 괴물도 인격신이라는 것도 흥미롭게 볼 부분이다.
이 글을 쓴 건 사실 오늘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연합뉴스 배너의 기사 제목으로 "교황청, 신 없는 과학 위험하다" 라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바티칸에서 다시 현재의 인류중심적 기류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논평을 낸 모양이다. 갈릴레오가 성경의 진리에 맞서 싸우던 때와는 아마도 많은 맥락에서 다른 양상일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이제 교회에 속하지 않는다. 교회의 범위보다 과학의 범위가 더 넓고, 자본은 교회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편리함을 먹고 자라난다. 사람들은 교회를 세우기보다 학교를 세우고 과학과 논리와 이성의 교육을 종교 교육보다 강조한다. 하지만 왜 이 자리에서 '신'인가?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1학년 과학 교과서, 그리고 생물1 교과서 맨 앞에 나오는 단원은 항상 '과학의 귀납적 연구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이 관찰을 한 뒤에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통해 가설을 검증한다. 과학은 인간의 디자인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인간 외적인 것을 관찰함으로서 시작된다. 인간 외적인 것들을 존중하는 것은 종교이며 그것을 인간 삶에 편입시키는 것이 과학과 기술의 영역이다. 하지만 종교와 과학 기술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모든 인간이 종교적인 동시에 과학적이다. 둘은 함께하거나, 싸우거나 대립하고, 혹은 서로에게서 피어 왔다.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창조과학과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종교 사이언톨로지의 존재 등이 그렇다.
당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인간은 지구를 깎아내고 숲을 없애고 동물을 학대하며 인간들끼리도 차별과 학대, 전쟁을 일삼아 왔다. 과학은 인간의 탐구심을 충족시켜주는 이상으로 인간 이외의 것들을 이용하는 기술이 되었고 인격신의 종교는 '신을 위한 전쟁'을 인간의 시점으로 합리화하고 '신이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인간들을 포함한 타자들을 분류하고 차별하게 만들었다. 과학의 슬로건으로서무궁무진한 가능성, 경제학을 설명하는 데 이용하는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어떤 공리로서 이용되는 전제들은 순환논증처럼 사람들의 이기적인 행동, 무궁무진한 탐구를 합리화시켜주고 있다.
이런 면에서, 어떤 종교에서 인격을 가진 신을 맹신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다스리는 원리 혹은 지배자를 인간과 비슷한 어떤 인격으로 상정'한다는 면에서 인간이 종교마저 인간의 오만을 합리화시킬 도구로 이용했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왜 세상의 원리가 人格, 인간의 생각과 같아야 하는가? (내 말은 인격신을 믿는 기독교나 이슬람교를 배격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인격신의 인격을 믿는 것과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믿는 것이 별개인 것과 같이, 여러분이 어떤 종교를 진심으로 이해하며 믿고 있다면 그것으로 내 논리도 그런 적당한 선에서 이야기되는 것이라고 알아주기를 바란다.)
차분하게 교황청의 논평의 '신'에 '세계를 관장하는 어떤 초월적인 법칙', 불교나 힌두교에서 제시하는 세계의 원리나 통일성을 대입해 보자. 우리는 사실 이 것들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모른다. 카르마의 법칙은 왠지 수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모호하다. 그저 '누가 개입하지 않는데도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에 잘 모르는 어떤 손길이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것을 인간이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오만이다.) 모든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체는 존재하지 않지만 생명을 지닌 모든 것은 카르마(업,業)의 법칙에 의해서 지구를 순환하고 생겨나거나 없어진다. 인격신을 믿는 이들이 '이 죄는 신이 적당히 용서할 만한 죄인가? 신은 어떤 성격을 가진 신인가?'를 생각한다면, 카르마의 법칙을 믿는 사람은 '내가 행한 행동이 지금 당장은 벌을 받지 않더라도 영혼에 묻은 때, 習(습)이 되고 무거운 業이 되어 지우기 힘든 짐이 될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rn
'신을 믿는 과학',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인격신이 아닌 신이 있는 과학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 외적인 것을 존중하는 과학' 이다. 인간은 결코 무엇이든 만들어내도 되는 신이 아님을 인정하며(물론 동시에 신도 인간이 아님을 생각해야 하고), 자신을 포함한 세상을 만들어내거나 운용하는 법칙이 있을 것임을 알며 그것을 존중하고, 또 자신 이외의 존재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가장 마지막 항목이 이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희망이 있다면 우리 인간들의 생각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노예는 해방되었고 이등 시민이었던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은 공평한 투표권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자기 자신과 동등하거나 더 나은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먹기 위해 키워지는 동물들의 고통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 더 나아가 '숲을 이용하는' 것 이상으로 자기 자신보다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산 지구적 삶의 동반자로서 식물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생겨날 것이다. 여름에 모기가 많아서 약을 뿌리거나 마구 잡기보다, 모기가 집에 들어와서 사람 피를 빨 만큼 우리 삶 속에 다른 동물들이 없고 또 남의 자리를 인간들이 차지하고 앉아 있으며 동시에 다른 수많은 지구상의 존재들을 배제하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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