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otonin Paper

세로토닌의 생각 조각들과 기록들 (2007 - 2012)

나의 일주일... 진상위 해소를 바라보면서.

by 세로토닌 | 2009년 12월 5일 03:29
조회 82 댓글 0
다들 뭐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을 이 사건에 요구하고

어떻게 울면서 그런 상황을 회피할 수 있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지만

이번 일주일간 제가 쓴 최대한의 이성 뒤에서

저의 마음 한 구석 숨어있던 감성의 논리로 이 글을 적어 봅니다.






n2009년은 다른 많은 해들이 그랬던 것처럼
n 기억에 많이 남을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처음 본 전동대회. 처음 본 수많은 학생들의 결의 방식.

처음 기획한 축제. 처음 본 전학대회와 그 곳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한 총학 선거까지.



n10월 정도였던 것 같아요.

믿을 만한 친구한테 내년 계획을 같이 하자, 라는 얘기를 했는데

자기는 이미 선본을 뛰고 있다는 거에요. 뭐, 나보다 더 큰 생각이 있는 애니까.

저는 그 애의 뜻대로 되길 바라면서 다른 곳에서 함께하는 내년을 그렸어요.



뭐 제 내년 계획이란 것도 역시 선거였습니다.

강아지 이런것도 없고, 선거 기간에 총학 선거 투표소나 지켜주고 그랬지만..

그래도 400명 넘는 사람들의 표와 92%의 지지로 당선됐어요.


그날 밤 12시 신관식당에서 투표소 지킴이들과 함께 연장투표 마지막 날 철수를 하는

선관위원장을 만났어요. 집행부로 일하다가 몇번 만났었죠.

약간 꼬질한 차림새로 웃으면서 인사해 주셨어요. 당선 축하한다고,

내일 개표하는데 놀러오라고. 8시쯤 오면 그때도 하고 있을 거라고.

뭐, 그날 밤 저널 속보를 통해서 인문대 명부가 없어졌다는 얘길 들었고

아, 그럼 내일 좀 늦게 가도 개표하고 있겠네, 도와주러 가야지..

그날은 오랜만에 푹 잤던 것 같습니다.



목요일. 개표날 아침 갔던 라운지는 뭐가 투표함이고 뭐가 사람인지 모르게 어지러웠어요.

다들 누워서 자고 있었고;; 투표함은 라운지 단상 앞에 가지런히 줄서 있었고

위캔선본 선본원이 자주색 셔츠를 입고 사람들에게 열심히 투표함이 문제가 있음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눈 마주친 기억이 나네요.

그 수많은 봉인에 새겨진 이름자가 설마 어제 투표소 같이 지켰던 그분인줄은 꿈에도 몰랐죠.


그때부터 전 저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을 이 총학생회 선거에 깊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직접 손으로 만져봤던 그 투표함들과, 때와 피곤에 절어 있던 후보들과 선본원들...

제가 관리하던 학관 라운지가 그런 분위기가 될 수 있을 줄이야 상상도 못했었죠.

뭐, 나중에 청문회 실무책임을 맡은 것보단 더 상상하기 쉬웠으려나요...-_-;;




그날, 목요일 오후. 난생 처음 가 본 총운위에서 모든 게 엎어졌습니다.

박진혁씨와 김진섭씨는 처음에 의장 역할을 하다가 참고인 자격으로 내려왔고

임시 의장으로 사회대 전 회장님이 회의를 진행하셨어요.

아까 봤던 투표함을 또 들고 오시더라고요. 그래도 뭐 우리가 감정단도 아니고.

어쨌건 긴 회의 끝에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지고 재투표가 결의되었죠.(이건 저 없을때 했나봐요.)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투표함을 살펴봤을 때

많이 너덜하지만 결정적으로 투표함을 열기 위해 뜯어져야 될 부분은 분명히 붙어 있었고,

도장 봉인도 그대로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제 눈에는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럴 사람들이 아니라는 가까운 이들의 증언도 믿었고요.

뭐 다른 사실이 있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금요일. 또 열린 총운위에서 진상조사위가 구체적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임시 의장을 새로 뽑았어요. 어제는 정말 말이 없으시던 분이 그런 큰 짐을 지시더군요.

역시 참고인 자격으로 박진혁씨와 김진섭씨가 있었습니다.

예스위캔이 있었고... 봉인 도장의 선본장님은 그때도 안 보이시더라구요.

n(생각해보니 총운위 올일이 많으셨는데 한번도 안 보이셨던 듯 하네요.. 저 있을때는 ㅠ)

예스위캔 쪽에서, 총학실에서 총학생회장이 하는 말은

공인이 공석에서 하는 말과 같으므로 녹음했을 때 떳떳할 수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

하는 말에 그가 대답을 하려 하다가 결국은 휴회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성명서를 낼 수 있었던 것은 토요일이었습니다.

몇시에 모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암튼 그날부터 진상조사위원회 활동이 시작되었고

성명서 확정하고 프린트하고 이름 넣고 그랬던 것 같네요. 그때 여러가지 의견 충돌이 있었던 기억이

있네요. 총운위 성명서에 이름을 넣기 싫으면 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때고요.


일요일도 충분히 머리아픈 이야기가 있었지만,

어쨌건 월요일이 왔습니다.


뭐 재투표는 시작되었고, 저희도 투표소를 하나 맡아서 했지요.

총투표랑 본투표 때 계속 애들 동원하던 게 너무 미안해서

치사해도 이번에는 다른 애를 시켜서 시간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8시쯤 시작된 첫 진상위 보고서 발표.

보도자료들. 그때까지는 생각도 못했던 증거들의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 깜짝 놀랐어요. 정말 처음에는.... 문자로 다른 부재중인 총운위원님께

충격과 공포라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그 짧은 시간 동안 놀랍도록 꼼꼼한 보고서를 만들어주신 진조위 사람들도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밝혀진 의혹에 관해서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증거들이기도 했습니다. 선관위도 아주 간단하게 해명했었구요

그때도 당사자들이 같이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날 총운위원들이 모이긴 했지만 총운위를 하진 않았어요.

할 뻔 했었지요. 결국 부결되었구요.

진조위는 그날 청문회를 하고 싶은데 언제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었지요.

전 그리고 자연대짱님의 도움을 받아 진조위 의장님께 전화를 했었습니다.

아주 조금의 자만으로, 나만큼 이 문제를 열심히 알고 있던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만약 사람이 없으면 제가 청문회 패널을 하고 싶다고 했었죠.




뭐, 사실 문제는 그다음날에 하는지 다다음날에 할건지가 거의 다였지만...

결국 화요일날 또 긴급하게 총운위가 소집되었습니다. 진조위에 의해서요.

청문회를 하기로 합의를 봤고 이제 구체적으로 짜야 하는데 실무를 총운위가 맡아 달라고 했어요.

열몇 명의 총운위원들이 그태껏 볼 수 없었던 적막 속에서 눈치싸움을 하던 일이 생각나네요.

어쨌건 패널을 하고 싶어서 전화까지 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던 저는

어떻게든 사건 해결을 돕고 싶다는 마음 + 이런저런 의리감.. 같은 것에 의해서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제가 하겠다고 말했었습니다. 뭔가 너무 많은 걸 생각해야 했어! -_-;

그 이후 선본장회의가 있다고 해서 저희 방으로 옮겨 가서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그곳이 저에게 익숙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진행은 제대로 되더군요.

내일 어떤 걸 어떻게 할지. 절차. 구성. 라운지 정리. 외부 언론 통제...

새벽에 자던 사람까지 깨워서 데려와서 회의했어요.


어쩄건 회의는 잘 끝났고,

회의가 끝나고 나서도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만 싫었습니다.

회의 내용 정리해서 공고를 내야 했거든요.

아무리 피곤해도 잉여력만은 남는 제가 일하면서 피곤하다고 투덜댔어요.ㅎㅎ


일 끝내놓고.

만들어서 보낸 문서가 총학에만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았고..

n(왜 그랫던 걸까요.  예스위캔은 왜 안보내냐고 전화까지 하던데.)

오랜만에 방에 들어가서 잤어요. 새벽 다섯시부터 다음날 1시까지..

심지어 제 투표소 지킴이 일까지 놔두고요.



수요일이 왔습니다.

그리고 뭐, ㅋㅋ 긴장된 마음으로 학교에서 와서 계속 청문회 준비를 했는데

이것저것 뽑고... 통제 준비하고...

결국 5시경 진조위에서 취소가 결정되고, 저는 뭐 별 미련없이 그렇구나,

하면서 최초의 취소 문자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진조위가 발의한 청문회인데,

제가 하고싶다고 버팅겨 봤자 아무것도 되지 않는 걸요.

n5시에 오시기로 했던 분이 안 오셨고. 총운위는 2차 성명을 내기로 결의했습니다.

다들 좀 화가 나 있었어요. 그리고 그래도 많은 총운위원님들이 그럴 분 아니라고, 안 그랬을 거라고

감싸주려고 노력했는데, 요청에 의해 소집한 총운위마저 나오지 않고 해명조차 올라오지 않았으니까요.

그제까지도 회의 잘 오셨던 분들이 왜 그랬을까...

그리고 또 저희 사무실로 옮겨서 회의했죠...ㅠㅋㅋ

기억에 성명서 개요짜기는 다들 가시고 마지막에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언론 분들이 오랜만에 또 많이 오셔서 보도도 해 주시고 그랬네요.

청문회를 하면 조금 더 알 수 있는.. 혹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내부 의장님이 저희 사무실 오셔서 저희 회의 옆에서 보시다가 조셔서 담요를 덮어드린 기억이 있네요.



청문회는 지나갔고, 성명서는 번개처럼 만들어졌습니다.

자보판 뽑는답시고 완전 대거 고쳐서 지금 총학 홈피에 있는건 거의 제가 쓴 듯 합니다.

어제는 성명서 내고 돌아다니고.. 투표소 지키고 무려 공부까지 했네요.ㅋㅋ

총운위 의장님 문자가 안 와서 조마조마하고 진조위 뭐 하나 하고 두근두근했던

오랜만에 평화로운 밤이었습니다.


금요일.

오늘(뭐 이 시점으로서는 어제지만)이 진상조사위 만들어질 때

최종발표를 하기로 했던 시점이었다네요. 과외 잡아 놨었는데... 쳇

암튼 발표 보기까진 몰랐지만 운 좋게도 과외 애가 절 위해서인지 자길 위해서인지
n
한 20분 일찍 과외를 끝내 주었고 그래서 진조위 발표 보려고 지하철 타고 내려서 택시 타고 날아왔어요.

밖에는 선본장 회의가 진행중. 안에는 진상조사위의 발표 막바지.

무슨 일인지 언론들도 별로 없었습니다.

전 보고서에 뭔가 더 있었으면, 더 많은 것을 찾았으면 하고 있었지만,

청문회가 취소되고 많은 수사거리를 잃은 지금... 더 나아진 건 없는 듯 보였습니다.

증거물들의 정리.. 정도. 뭐 보시면 아시겠지만요.

그때 2차 성명서 내던 날 밤에도 같이 이야기했었던 것처럼

학생자치 시스템 안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 속에서

지금까지 한 것이 최대한이었던 것 같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그때 흘릴 수 있는 눈물이 있다면 흘릴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뭔가 마음이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운 그 마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공유했을 겁니다.

뭔지 모를 슬픔이나 갑작스러운 이별이 주는 기분 같은 것들.

세 번에 이은 박수와 인사.....



수고 많으셨습니다. 진상조사위원회 여러분.








에필로그가 되려나요.



리본을 찍었었어요.

친구랑 같이 하는 내년을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재투표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잘못한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제 친구가 리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까 선본장 회의를 마치고 총운위 수다장을 빼꼼히 보던 그애를 보러 나갔습니다.

서로 안으면서 수고가 많다고, 고생한다고 말했죠.

정말 많이 힘들었을 거에요.

걔 마음고생 몸고생 한거 생각하면 제가 무슨 고생이 있을까요.

선본이 거의 와해된 와중에도 계속해서 선본장회의는 나오는 그 녀석.

앞으로 너는 어떡하냐고, 너 하고싶은게 많지 않냐고 지금 이 일이 너에게 오점으로 남는 건 아니냐고
n
그런 저의 걱정에 걔는 그저 이번 일 때문에 아무 관계없이 상처받은 새내기들이 더 걱정이라더랍니다

이런 식으로 열정을 불태운 선거가 허망하게 끝났는데... 걔네가 고학번이 되고 어른이 되어서

어디 가서 선거 잘 하자 대표 잘 뽑자 이런 말 한마디 할수나 있겠냐고...



그 친구랑 총학실 앞 복도에 앉아서 다시 내년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제가 했던 소박하디 소박한 제안도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n................휴.




조사위는 그동안 했던 모든 증거와 자료들을 총운위에게 맡기고 갔습니다.

지난 본투표 기간 동안의 투표함과 각종 조사 자료 쓰레기통에서 찾은 봉인지가 담긴 지퍼백들

총학 방에서 혹시나 하고 조사위가 찾아놓은 50대, 51대 선거 관련 자료들과

투표소별로 묶여있던 투표용지 뭉치들 특이사항 적어놓은 것들

내부 의장님은 저에게 창고 열쇠를 맡기셨습니다.


무방비로 총학실에 앉아 있는 수많은 봉투와 상자들.

어떻게 그동안 저런 걸 저렇게 많이.......


총운위 사람들끼리 청테이프랑 종이로 묶고 봉인하고 싸인도 했어요.

이번 선거에서 배운 것이란 봉인을 어떻게 하는지였는지도 모르겠네요..

굳게 닫힌 보건진료소 철문 앞에서 좌절하고 다같이 짐을 들고 돌아서 창고로 갔습니다.

봉인을 열고 문을 따고 짐을 넣고 다시 봉인하고 다시 싸인하고



n2009년 12월 5일 새벽 12시 54분

그렇게 53대 총학생회 선거 본투표 모든 증거물은 봉인되었습니다.

열쇠는 당분간 잘 보관해 두겠습니다.


n* 세로토닌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02-14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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