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무위자연
by 세로토닌 | 2006년 12월 14일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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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모두 책에서 퍼온 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마치 진수 성찬이라도 받아놓은 듯 신바람이 났네.
화창한 봄날 정자에 올라 꽃 구경이라도 하듯이.
그러나 나만은 담담하고 조용하고 마음이 동하는 기미도 없네.
마치 아직 웃을 줄도 모르는 갓난아이처럼.
마치 아주 지쳐 돌아갈 집도 없는 강아지처럼.
사람들은 무엇이든 남아돌 만큼 가지고 있지만
나만은 모든 걸 잃어버린 것 같네.
아, 나는 바보 같구나. 아무것도 모르고 멍하니.
세상 사람들은 똑똑한데, 나는 그저 멍청할 뿐.
남들은 딱 잘라 잘도 말하는데, 나만은 우유부단, 우물쭈물.
흔들흔들 흔들리는 큰 바다 같네.
쉴 줄 모르고 흘러가는 바람이네.
'덕'에 대해
최고의 덕을 가진 사람은 의식적으로 덕을 얻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래서 덕이 완전하게 나타난다. 수준이 낮은 사람은 의식적으로 덕을 얻고자 하며, 또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안달한다. 그래서 덕이 완전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최상의 덕은 덕을 얻고자 애쓰지 않고 또한 그것을 바깥으로 자랑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낮은 덕은 덕을 얻고자 애쓸 뿐 아니라 그것을 바깥에 나타내에 남에게 과시하려 한다.
'앎'에 대해
지혜는 도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한 장식물에 지나지 않고 인간을 어리석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지식과 분별심이 발달하고 나서 인간의 기교에 의한 큰 거짓이 나타났다.
안다는 것이 사물의 실상을 아는 게 아님을 아는 것은 최상의 지혜요, 안다는 것이 사물의 실상을 아는 게 아님을 모르는 것은 착오다. 착오를 착오로서 자각하는 그것에 의해 비로소 착오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도를 체득한 사람은 착오에 빠지지 않는다.
-출처 : 「동양철학에세이」, 김교빈*이현구, 1993
세상 사람들은 마치 진수 성찬이라도 받아놓은 듯 신바람이 났네.
화창한 봄날 정자에 올라 꽃 구경이라도 하듯이.
그러나 나만은 담담하고 조용하고 마음이 동하는 기미도 없네.
마치 아직 웃을 줄도 모르는 갓난아이처럼.
마치 아주 지쳐 돌아갈 집도 없는 강아지처럼.
사람들은 무엇이든 남아돌 만큼 가지고 있지만
나만은 모든 걸 잃어버린 것 같네.
아, 나는 바보 같구나. 아무것도 모르고 멍하니.
세상 사람들은 똑똑한데, 나는 그저 멍청할 뿐.
남들은 딱 잘라 잘도 말하는데, 나만은 우유부단, 우물쭈물.
흔들흔들 흔들리는 큰 바다 같네.
쉴 줄 모르고 흘러가는 바람이네.
'덕'에 대해
최고의 덕을 가진 사람은 의식적으로 덕을 얻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래서 덕이 완전하게 나타난다. 수준이 낮은 사람은 의식적으로 덕을 얻고자 하며, 또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안달한다. 그래서 덕이 완전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최상의 덕은 덕을 얻고자 애쓰지 않고 또한 그것을 바깥으로 자랑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낮은 덕은 덕을 얻고자 애쓸 뿐 아니라 그것을 바깥에 나타내에 남에게 과시하려 한다.
'앎'에 대해
지혜는 도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한 장식물에 지나지 않고 인간을 어리석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지식과 분별심이 발달하고 나서 인간의 기교에 의한 큰 거짓이 나타났다.
안다는 것이 사물의 실상을 아는 게 아님을 아는 것은 최상의 지혜요, 안다는 것이 사물의 실상을 아는 게 아님을 모르는 것은 착오다. 착오를 착오로서 자각하는 그것에 의해 비로소 착오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도를 체득한 사람은 착오에 빠지지 않는다.
-출처 : 「동양철학에세이」, 김교빈*이현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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