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 나목
by 세로토닌 | 2006년 12월 14일 10:17
조회 113 댓글 0
학교 필독서로 읽었는데, 꽤 오랜만에 괜찮은 연애 소설이었습니다.
연애 소설이라는 것이 깊이가 없으면 경박하게 마련이고, 어설프게 만든 글은 저절로 손이 떨어지게 마련인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후에 오랜만에 재밌었습니다.
역시 "여자" 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면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재미있었지 않나 싶은데- (여자아이들의 반응은 굉장히 호의적!) 또 비평이라는 것에 다다르면 자신이 없어집니다. "사람" 이라는 것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 아멜리 노통에 비해, 박완서씨는 우리나라 사람이며, 그의 얼굴을 책에 당당히 싣고, 6.25를 겪은 어르신이십니다. 게다가 노통보다 제 어설픈 글을 볼 가능성도 굉장히 높기까지 합니다. 봐 주실 리 없겠지만요.
6.25를 지나오면서, 근대의 가부장적 관습이 남아있는 사회를 뚫고 진보된 시대로 오면서 겪는 가치관의 갈등이 나목이라는 작품에 많이 드러난 것 같았습니다. 여러 대목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평가해 본 것들은 조금 나중에 생각해 낼 수 있었던 '시점의 평등' 이라는 생각에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식의, 아들 둘이 죽으면 집안이 무너지는 줄 아는 시대를 뚫고 나온 그녀에게 지금 그런 일은 피부로 느껴본 적 없는 저같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애가 현대의 가치관 잣대를 들이대면서 뭐라 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은 뭔가 좀 써보고 싶었던 생각마저도 무너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고전이 그 시대 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읽혀져야 하고, 역사는 항상 새로운 시각에서 기술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저에게 조금은 용기를 줄 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대에 따라서 가치관은 변화하고, 또한 후대의 사람들은 전대의 시각을 비판하면서도 존중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나름대로 그 당시 가질 수 있었던 최선의 것이었고, 지금 우리가 낫다고 해서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깔볼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문학 작품이나 역사를 다시 들여다 보는 것은, 혹은 그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새롭고 더 넒은 사고의 범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시점의 평등이 무너지는 것이 용납되는 것은 우리가 사고를 확장할 때 그들을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옛 사람들의 생각들은 우리도 충분히 한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며, 그러므로 굉장히 쉬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으로 남겨진 그들의 생각과 시각이 지금 현재 우리의 사고와 결합했을 때 더 새로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생각할 거리와 또 다른 사고를 펼쳐보이는 데에 버팀목 역할을 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이 많이 빗나갔습니다. 나목은 충분히 좋은 작품이었지만 저와는 생각이 다른 부분도 많았지요. 나목 뿐만 아니라 지금 박완서씨의 작품이 이번이 네번째인데, 어느 정도 한 작가의 세계관이나 가치관 등이 머릿속에 구도가 잡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아마 앙테 크리스타의 글을 쓸 때도 그건 이미 앙테크리스타 뿐만이 아니라 전체의 노통 작품을 포괄하는 내용이었었죠.
박완서씨 작품은 '읽을 만' 합니다. 어떤 작가의 작품이 읽을 만 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렇게 흔한 읽은 아닙니다.. 지금은 제가 조금 더 많은 걸 배우고, 또 박완서씨도 저에게 그분의 작품을 좀 더 읽을 시간을 주셔야 합니다. 작품 한 4개쯤 더 읽은 뒤에 제대로 된 비평글을 좀 써 볼까 합니다.
연애 소설이라는 것이 깊이가 없으면 경박하게 마련이고, 어설프게 만든 글은 저절로 손이 떨어지게 마련인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후에 오랜만에 재밌었습니다.
역시 "여자" 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면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재미있었지 않나 싶은데- (여자아이들의 반응은 굉장히 호의적!) 또 비평이라는 것에 다다르면 자신이 없어집니다. "사람" 이라는 것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 아멜리 노통에 비해, 박완서씨는 우리나라 사람이며, 그의 얼굴을 책에 당당히 싣고, 6.25를 겪은 어르신이십니다. 게다가 노통보다 제 어설픈 글을 볼 가능성도 굉장히 높기까지 합니다. 봐 주실 리 없겠지만요.
6.25를 지나오면서, 근대의 가부장적 관습이 남아있는 사회를 뚫고 진보된 시대로 오면서 겪는 가치관의 갈등이 나목이라는 작품에 많이 드러난 것 같았습니다. 여러 대목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평가해 본 것들은 조금 나중에 생각해 낼 수 있었던 '시점의 평등' 이라는 생각에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식의, 아들 둘이 죽으면 집안이 무너지는 줄 아는 시대를 뚫고 나온 그녀에게 지금 그런 일은 피부로 느껴본 적 없는 저같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애가 현대의 가치관 잣대를 들이대면서 뭐라 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은 뭔가 좀 써보고 싶었던 생각마저도 무너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고전이 그 시대 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읽혀져야 하고, 역사는 항상 새로운 시각에서 기술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저에게 조금은 용기를 줄 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대에 따라서 가치관은 변화하고, 또한 후대의 사람들은 전대의 시각을 비판하면서도 존중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나름대로 그 당시 가질 수 있었던 최선의 것이었고, 지금 우리가 낫다고 해서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깔볼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문학 작품이나 역사를 다시 들여다 보는 것은, 혹은 그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새롭고 더 넒은 사고의 범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시점의 평등이 무너지는 것이 용납되는 것은 우리가 사고를 확장할 때 그들을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옛 사람들의 생각들은 우리도 충분히 한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며, 그러므로 굉장히 쉬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록으로 남겨진 그들의 생각과 시각이 지금 현재 우리의 사고와 결합했을 때 더 새로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생각할 거리와 또 다른 사고를 펼쳐보이는 데에 버팀목 역할을 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이 많이 빗나갔습니다. 나목은 충분히 좋은 작품이었지만 저와는 생각이 다른 부분도 많았지요. 나목 뿐만 아니라 지금 박완서씨의 작품이 이번이 네번째인데, 어느 정도 한 작가의 세계관이나 가치관 등이 머릿속에 구도가 잡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아마 앙테 크리스타의 글을 쓸 때도 그건 이미 앙테크리스타 뿐만이 아니라 전체의 노통 작품을 포괄하는 내용이었었죠.
박완서씨 작품은 '읽을 만' 합니다. 어떤 작가의 작품이 읽을 만 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렇게 흔한 읽은 아닙니다.. 지금은 제가 조금 더 많은 걸 배우고, 또 박완서씨도 저에게 그분의 작품을 좀 더 읽을 시간을 주셔야 합니다. 작품 한 4개쯤 더 읽은 뒤에 제대로 된 비평글을 좀 써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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