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otonin Paper

세로토닌의 생각 조각들과 기록들 (2007 - 2012)

나쓰메 소세키 - 그 후

by 세로토닌 | 2006년 12월 14일 10:20
조회 132 댓글 1


참 오랜만에 소설을 한 편 재미있게 읽었다는 느낌이 든다. 음- 다른 데다가 빗대보자면,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랑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만큼 '그 후'는 편하게 읽혀지지만 은근히 여운을 남기는 그런 소설이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다이스케라는 한 한량 - 30이 넘도록 독신에다가, 아버지가 주는 돈으로 하인과 서생까지 놓고 사니 말이다 - 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사실 그는 그냥 한량이 아니라, 일본 근대 사회의 지식인이자 방관자이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지만, 책과 신문은 꼼꼼히 챙겨 보면서 현대화된 일본의 사회(무려 1909년이다. 우리는 그 때 한일합방을 했었는데-)를 비판하는 것은 그의 몫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지방으로 갔던 친구 히라오카가 실직해서 도쿄로 올라온다.

다이스케는 원래 직업이 없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히라오카와 만나 오랜만에 마음을 트고 이야기하는 술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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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아까부터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며 나를 꽤 공격했지만, 나는 가만히 있었네. 자네가 공격한 대로 나는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으니까 가만히 있었던 거야."

"왜 일을 안 하는 거지?"

"왜 일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그건 내 탓이 아니야. 말하자면 세상이 그렇게 만드는 거지. 좀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일본과 서양과의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일하지 않는 것야. 우선 일본만큼 빚을 져서 가난에 허덕이고 있는 나라는 없을 거야. 자넨 그 빚을 언제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야 물론 외채 정도야 갚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만이 빚이 아니야. 일본은 서양에서 빚이라도 얻지 않으면 도저히 꾸려나갈 수가 없는 나라야. 그러면서도 선진국이라고 자처하고 있지. 그러고는 어떻게든 선진국 대열에 끼려고 하고 있어. 그러니 모든 방면에 걸쳐서 깊이보다는 넓이를 확장해 선진국처럼 벌려놓은 거야. 무리하게 벌려놓았기 때문에 더욱 비참한 거야. 소와 경쟁을 하는 개구리처럼 이제 곧 배가 터지고 말 거야. 그 영향은 전부 우리 개인들에게 미치게 될 테니 두고 보게나.

  ~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타락해 가고 있어. 일본의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밝게 빛나고 있는 구석이라고는 단 한 군데도 없지 않은가? 온통 암흑이야. 그 속에서 나 혼자만이 뭐라고 말한들, 그리고 무슨 일을 한들 소용이 없지. 나는 원래 게으른 편이야. 아니 자네와 가깝게 지내던 때부터 나는 게으름쟁이였어. 그때는 억지로라도 자신만만해했으니, 자네에게는 재능 있고 유망하게 보였을 거야. 그야 물론 지금이라도 일본 사회가 정신적, 도덕적, 구조적으로 대체로 건전하다면 나도 예전처럼 유망한 사람이 될 수 있겠지.

~ 하지만 이 상태라면 안 돼.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나는 오히려 나 자신만을 위해 살 수밖에. 그래서 자네 말대로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 안에서 나에게 가장 적합한 것과 접촉하며 지내는 것에 만족하고 있네. 나서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내 생각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니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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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엔 사회를 움직이기에는 너무나도 연약하고 자신없는 지식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무리 세상을 보는 눈이 있어도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고치도록 요구하거나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말 바보일 뿐이다. 세상을 볼 수만 있을 뿐, 세상에 발을 딛지는 못하는 것이다.그러면서도 자신이 활약할 수 없는 세상을 탓한다. 아래 히라오카의 이야기는 명백하게 그 메시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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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재미있는데. 무척 재미있어. 나처럼 구석에 처박혀서 현실과 싸우고 있는 사람은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네. 일본이 빈약하다든지 겁쟁이라든지 하는 것은 일하고 있는 동안은 잊어버리게 되지. 세상이 타락했다 할지라도 그러한 타락을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그 안에서 활동하니 말이야. 자네와 같은 한가한 사람이 보기에는 일본의 가난이나 우리들의 타락이 걱정될지도 모르지만, 그건 이 사회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방관자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지. 말하자면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볼 여유가 있으니까 그렇게 되는 거야. 누구든 바쁠 때는 자신의 얼굴 따위는 잊어버리게 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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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히라오카와 다이스케는 서로 완전히 정반대의 처지에 있는 셈이다. 히라오카는 가난한 집과 아픈 아내를 이끌고 생활의 최전선에서 겨우 직업을 얻어 싸우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그 후 이 지식인의 평화로운 생활은 부정당하게 된다. 혼담이 오가는 걸 대충 봐서 결혼하기 전까지는 돈을 받아 사는 여유있는 생활 속에서, 그는 히라오카의 아내 미치요에 대한 사랑을 알게 되고, 그것을 미치요에게 고백한 후 앞으로 서로 같이 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계속 끌어왔던 중요한 혼담을 거절한다. 그러나 히라오카가 아버지와 형, 형수에게 다이스케의 부정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고, 다이스케는 졸지에 자기 집에서 버림받는다. 그리고는 직업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지식인이란 뭘까? 한 나라에서 가장 잘 교육받고, 그 나라의 현재를 분석해서 미래를 밝혀야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한때 에코의 칼럼을 모은 책들에 중독되어서(세상의 모든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이렇게 글을 쓰면서 풍자를 늘어놓는 에코는 진짜 지식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다이스케의 경우- 실제 지식인이지만 현실에서 한발짝 물러나와 있는, 어디에도 참여하고 싶어하지 않는 지식인의 표본이다. 한때는 나도 미래가 너무 두려워서 차라리 누군가에게 의지하면서 책만 읽고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것도 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 길이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건 이 책은 나에겐 지식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인문계이고, 나중에 교수나 칼럼니스트가 되기를 원하는 나에게 지식인이 된다는 것은 어렵지만 필수적인 일이다. 또 그러면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지식인들은 무얼 하고 있는지도 다시 생각해 본다.

댓글 1

세로토닌
2006년 12월 14일 10:20 125.133.*.*
여유로웠던 고2때는, 거의 모든 책에 이런 장문의 소감문을 쓴 것 같다. 다시 노력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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