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otonin Paper

세로토닌의 생각 조각들과 기록들 (2007 - 2012)

철학 학교

by 세로토닌 | 2006년 12월 14일 10:21
조회 123 댓글 0
아래 삶의 기록 포스트를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또 책을 빌렸지요.-_ㅜ

인천의 서구청에는 작은 시민열람실이 있는데- 거기엔 또 굉장히 좋은 책들이 많아요.

너무 구석에 있는데다가 어두워서-_ㅠ 사람들이 모르고 외면하지만요 ㅠㅠ

(전 왜 이런 걸 잘 찾아내는걸까요? -_-;;)

근데 시간대가 공공기관 시간에 맞춰져서, 방학 때나 가끔 가서 책을 조금씩 빌려온답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좋은 책들이 손때도 안 타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일반인들이 잘 관심을 안 가지는 과학, 철학책!!

새책이라 기분은 좋지만 조금은 안타까워요.



제가 지금 소개하는 「철학학교」라는 책도 그런 책들 중에 하나랍니다.

2004년 여름에 발간된 책인데, 가져와놓고 보니 책이 열리면서 접힌 자국이 없는것이-_-;;

제가 처음으로 만지는 것 같더군요. 너무 깨끗해요.

이 책은 여느 철학입문서와 같이, 여러가지 철학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와

그에 대한 많은 철학자들의 답들, 일반 사람들의 통념 등을 재미있게 이야기합니다.

어렵지 않으니, 철학이 뭔지 슬쩍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길 추천해요.



그런데, 이 책을 읽다가 재밌는 걸 발견했습니다.

짜라투스트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짜라투스트라가 신이 사고될 수 없다는 이유로

없다고 했던 이야기가 있었죠? 물론 창조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걸(이건 짜라투스트라 이야기

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 강조하기 위해서 집어넣은 이야기 중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요.

그 때 전 이 사람이 '소극적'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왜 그런지는 반박하지 못했지요.

그의 유사한 문제와, 답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세계의 처음이 무엇인가] 라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입니다.(27p)

(그리 어렵지 않으니 한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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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처음이 무엇이냐는 문제가 '의미가 없을' 가능성



왕대방  보세요. 이 의자, 저 산, 이 나무를 만든 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의미가 있어요. 하지만 세계 전체를 만든 원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어요.

오신아  뭐라고요? 제 질문이 의미가 없다고요?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죠? 한번 정당화해보세요.

왕대방  좋아요. 설명해드리죠. 어떤 것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세계 안에 있는 어떤 것이 다른 어떤 것의 원인이 되었는지를 묻는 것이죠. 원인을 묻고 대답을 하는 말놀이를 할 때, 바로 이런 방식으로 해요. 예를 들어 제가 오박사에게 창밖의 나무가 존재하는 원인이 무엇이냐고 물었다고 해봐요. 이 때 저는 오박사에게 그 나무를 만든, 세계 안에 있는 다른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찾아주기를 바라는 겁니다. 어떤 것의 원인을 묻는 것이, 세계 안에 있는 다른 무엇이 그것을 만들었는가를 묻는 것이라면, 세계 전체를 만든 원인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의미없을 수밖에 없어요. 그것은 그 질문이 의미를 가지는 범위 밖에서 답을 찾는 셈이지요.

오신아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안 가네요.



   (중략)

왕대방은 오신아에게 이해를 돕기 위해 뭐의 북쪽에는 뭐가 있냐는 식의 연쇄적인 질문을 합니다.



왕대방  그러면 북극의 북쪽에는 무엇이 있죠?

오신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왕박사 질문은 전혀 의미가 없어요. 북극의 북쪽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말은 전혀 의미가 없지요. 어떤 것이 다른 무엇의 북쪽에 있다는 말은, 그것이 다른 무엇보다 북극에 더 가깝다는 말이에요. 그렇다면 북극의 북쪽에 무언가가 있다는 말은 의미가 없는 거죠. 안 그런가요?

왕박사  그렇겠군요. 그렇다면, 세계의 원인에 대한 오박사님의 질문 역시 의미가 없지 않겠어요?

오신아  왜 그렇죠?

왕대방  예를 들어 누군가가 지진의 원인이 무엇인지 묻는다고 해 보세요. 그리고 또다른 누군가가 지진의 원인의 원인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질문하다 보면, 빅뱅 바로 직전까지 원인을 추적해볼 수 있을 거에요. 그런데 여기에서 빅뱅의 원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는 것이죠. 그것은 바로 북극의 북쪽에는 무엇이 있는가 하는 질문과 유사해요. 그것은 그 질문이 의미를 가지는 범위 밖에 있어요.



오신아  그런데, 제 질문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요? 제가 보기에는, 왕박사는 세계 자체의 원인을 묻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점을 실제로 입증하지는 못한 것 같아요.

왕대방  어째서 그런가요?



오신아  왕박사의 논증은 이래요. 만약 우리가 일반적으로 특정한 논의영역 안에서만 어떤 질문을 제기한다면, 그 질문은 그 논의영역 밖에서는 의미있게 제기될 수 없다는 거죠. 그러나 왕박사의 논증에서는 오류가 있어요. 반례를 하나 들어볼게요. 사람들은 역사상 꽤 오랫동안 실용적인 질문들만을 생각해왔어요. 말하자면 그 답이 유용한 문제들만을 제기해왔지요. 예를 들어, 식물이 자라는 원인은 무엇인가, 계절이 바뀌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의 문제에 대해 알고 싶어 했어요.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하루하루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 원인을 알고 싶어해요. 가령, 하늘이 왜 푸른가 하는 문제를 두고 골머리를 앓지는 않겠죠.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즉 우리가 그런 비실용적인 질문을 일반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질문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우리는 분명히 그 질문을 제기할 수 있고, 그리고 질문을 제기했다면 그 질문은 확실히 의미가 있는 거에요. 물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는 점은 저도 인정해요.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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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는 비록 우리가 논의할 수 있는 범위 밖이라도 그 질문 자체가 의미를 잃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이 있든 없든, 신이 단지 우리의 논의 밖에 있는 대상이라는 이유로 우리의 질문 자체가 부정되고 그로 인해서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로 연결시킬 수 있는 것 같아요. 자연과학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우리는 어떤 현상을 지금 당장의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꾸준히 시간을 가지고 생각을 하고 연구를 하다 보면 답이 나오고, 그 때는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이 책 1권의 5장 「상대주의자들의 거짓말」편이 마음에 들어요. 어렴풋이 무조건 좋은 거라고 오해하기 쉬운 상대주의를 대충은 알게 된 것 같고, 제 입장에선 어려웠거든요 ^^;



재미있는 책이니, 방학 끝나가는 무렵에 뭔가 한 게 없다고 느껴진다면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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