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
by 세로토닌 | 2006년 12월 14일 10:26
조회 83 댓글 0
오랜만에 제대로 된 영화를 한편 봤다.
저번에 쓴 글에서도 이야기했고, 그후 많은 사람들(면수샘,먼지고모 등등)에게서
추천을 받아 감상의 압박이 심했더랜다. 결국 아멜리에는 제치고 이거 먼저다.
프랑스에서는 똘레랑스라는 말이 많이 강조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말로 하면 관용, 즉 옳지도 나쁘지도 않은,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서 관용적이어지자는 이야기다.
그 한 예로 동성애자라든가, 독신주의자(흔하긴 하지만) 등을 들 수 있는데,
일반적인 '상식-통념-' 을 가지고 사는 많은 대중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대상이다.
그렇지만 똘레랑스는 이들을 Politically Correct, 즉 개인의 개성 - 각각 다름 -
이라 하여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공존을 추구함으로써 대립을 무마시키려는 노력이다.
사실 의견 일치는 어찌어찌 타협을 잘 하면 될 수 있지만, 개인의 사적인 감정을
일치키는 건 힘들다. 그 성격 자체부터가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자유로운 느낌
이라는 것 때문에 일치라는 것과는 맞지 않으나, 실제 우리 생활 속에서는 의견의
대립보다 감정의 대립으로 인한 싸움을 더 많이 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 영화는 그런 타인의 취향, 즉 타인의 느낌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계속 보면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가 생각이 났는데,
사람들의 소소한 삶을 그냥 그대로, 어쩌면 좀 따분할 정도로 그린 게 비슷했다.
그들의 깊지만 무료한 눈빛이 교차하는 장면들과, 의미없어 보이지만 생각해보면 의미있는 대화들.
거기에다가 Au lait 같은 음악이나, 배경이 커피숍인데도 불구하고 아예 음악이 나오지
않는 많은 장면들은 영화의 허무성 그러나 실제성을 부각시킨다.
이건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우리 일상의 단편이라고.
니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카스텔라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과 시동생의 감각을 짓밟고, 연극배우는 자신을
사랑하는 카스텔라의 문화적 무지를 비웃는다. 보디가드는 마약을 파는 여자친구에게
비난의 충동을 느끼고, 카스텔라의 참모는 그에게 올바른 충고를 하지만 그의 '방식'을
싫어하는 카스텔라에게 무시당한다.
점점 깊어지는 감정적 갈등으로 전개되던 영화는 카스텔라가 "관용"적 충격을 받으면서 전환된다.
그가 평소에 습관적으로 쓰던 "호모 같은 것" 이라는 말 때문에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드러날 수 없었던 대립이 순간의 실수로 드러나게 되고,
그는 그 폭력의 대상의 속성에 대해 실제 인격이 비난받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가 택한 건, 그것에 대해 아무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똘레랑스였다.
그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그림을 사고,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곳에 걸었다.
자신의 그림을 싫어하면서 치우는 아내에게 그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임을 당당히 밝혔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집을 나갔으며 친구 화가와 동료 화가에게는 공장 벽화를
맡기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가 그토록 좋아했던 배우와의 영어 교습은 그가 배우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시 하나를 읽어 준 뒤 무시당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더이상 미련을 두지 않는다.
자신의 무시를 더 참지 못하고 사직서를 내는 참모에게는 더 생각해 보라며 진심으로
이야기한다.
카스텔라 아내의 개가 집의 가정부를 물었을 때 그는 가정부에게 개와 친해지라고 한다.
그 때 가정부가 했던 대답은, 이 영화를 다 대변하고도 남았다.
"물리지 않으려면 친해져야 하나요?"
상처받지 않으려면 이해해야 하나요? 이해를 강요당해도 괜찮은 건가요?
카스텔라의 아내도 카스텔라의 가출을 통해 자신에 대해 많이 깨닫게 된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손을 떼어버린 시동생의 집에 찾아가게 되고,
그가 반대했던 돼지 무늬로 꾸며놓은 집을 보면서 "이것도 예쁘네" 하고 말한다.
연극배우는 친구인 마약밀매상에게 카스텔라씨가 그를 많이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가 혐오했던 동성애자들과 스스럼없이 거래를 하고 말을 주고받는 걸 보고 생각이 달라진다.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카스텔라에게 새 연극의 초대장을 보내며,
마지막 연극이 끝나고 막이 내릴 때 그의 얼굴을 보고 단 한번도 지은 적 없었던
환한 웃음을 짓는다.
결국 이 영화는 서로 다르다는 것은, 서로 다르게 느끼고 산다는 것을 인정하면
우리는 조금 더 부드럽게 스쳐지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저번에 쓴 글에서도 이야기했고, 그후 많은 사람들(면수샘,먼지고모 등등)에게서
추천을 받아 감상의 압박이 심했더랜다. 결국 아멜리에는 제치고 이거 먼저다.
프랑스에서는 똘레랑스라는 말이 많이 강조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말로 하면 관용, 즉 옳지도 나쁘지도 않은,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서 관용적이어지자는 이야기다.
그 한 예로 동성애자라든가, 독신주의자(흔하긴 하지만) 등을 들 수 있는데,
일반적인 '상식-통념-' 을 가지고 사는 많은 대중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대상이다.
그렇지만 똘레랑스는 이들을 Politically Correct, 즉 개인의 개성 - 각각 다름 -
이라 하여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공존을 추구함으로써 대립을 무마시키려는 노력이다.
사실 의견 일치는 어찌어찌 타협을 잘 하면 될 수 있지만, 개인의 사적인 감정을
일치키는 건 힘들다. 그 성격 자체부터가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자유로운 느낌
이라는 것 때문에 일치라는 것과는 맞지 않으나, 실제 우리 생활 속에서는 의견의
대립보다 감정의 대립으로 인한 싸움을 더 많이 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 영화는 그런 타인의 취향, 즉 타인의 느낌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계속 보면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가 생각이 났는데,
사람들의 소소한 삶을 그냥 그대로, 어쩌면 좀 따분할 정도로 그린 게 비슷했다.
그들의 깊지만 무료한 눈빛이 교차하는 장면들과, 의미없어 보이지만 생각해보면 의미있는 대화들.
거기에다가 Au lait 같은 음악이나, 배경이 커피숍인데도 불구하고 아예 음악이 나오지
않는 많은 장면들은 영화의 허무성 그러나 실제성을 부각시킨다.
이건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우리 일상의 단편이라고.
니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카스텔라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과 시동생의 감각을 짓밟고, 연극배우는 자신을
사랑하는 카스텔라의 문화적 무지를 비웃는다. 보디가드는 마약을 파는 여자친구에게
비난의 충동을 느끼고, 카스텔라의 참모는 그에게 올바른 충고를 하지만 그의 '방식'을
싫어하는 카스텔라에게 무시당한다.
점점 깊어지는 감정적 갈등으로 전개되던 영화는 카스텔라가 "관용"적 충격을 받으면서 전환된다.
그가 평소에 습관적으로 쓰던 "호모 같은 것" 이라는 말 때문에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드러날 수 없었던 대립이 순간의 실수로 드러나게 되고,
그는 그 폭력의 대상의 속성에 대해 실제 인격이 비난받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가 택한 건, 그것에 대해 아무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똘레랑스였다.
그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그림을 사고,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곳에 걸었다.
자신의 그림을 싫어하면서 치우는 아내에게 그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임을 당당히 밝혔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집을 나갔으며 친구 화가와 동료 화가에게는 공장 벽화를
맡기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가 그토록 좋아했던 배우와의 영어 교습은 그가 배우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시 하나를 읽어 준 뒤 무시당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더이상 미련을 두지 않는다.
자신의 무시를 더 참지 못하고 사직서를 내는 참모에게는 더 생각해 보라며 진심으로
이야기한다.
카스텔라 아내의 개가 집의 가정부를 물었을 때 그는 가정부에게 개와 친해지라고 한다.
그 때 가정부가 했던 대답은, 이 영화를 다 대변하고도 남았다.
"물리지 않으려면 친해져야 하나요?"
상처받지 않으려면 이해해야 하나요? 이해를 강요당해도 괜찮은 건가요?
카스텔라의 아내도 카스텔라의 가출을 통해 자신에 대해 많이 깨닫게 된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손을 떼어버린 시동생의 집에 찾아가게 되고,
그가 반대했던 돼지 무늬로 꾸며놓은 집을 보면서 "이것도 예쁘네" 하고 말한다.
연극배우는 친구인 마약밀매상에게 카스텔라씨가 그를 많이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가 혐오했던 동성애자들과 스스럼없이 거래를 하고 말을 주고받는 걸 보고 생각이 달라진다.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카스텔라에게 새 연극의 초대장을 보내며,
마지막 연극이 끝나고 막이 내릴 때 그의 얼굴을 보고 단 한번도 지은 적 없었던
환한 웃음을 짓는다.
결국 이 영화는 서로 다르다는 것은, 서로 다르게 느끼고 산다는 것을 인정하면
우리는 조금 더 부드럽게 스쳐지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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