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otonin Paper

세로토닌의 생각 조각들과 기록들 (2007 - 2012)

진달래 멘산을 포함한 몇몇 십대의 끝자락들에게.

by 세로토닌 | 2007년 12월 5일 09:40
조회 82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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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멘산을 포함한 몇몇 십대의 끝자락들에게.




당신은 "행동하기 위하여"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기 전에" 고민한다. 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는 당신은 첫 메이저 등판에 얼어버린 흔한 신출내기 투수에 불과하다.

당신에게 수많은 경험이 있었다면, 환상의 리드로 사인을 보낼 포수가 있었다면, 첫 등판이 월드시리즈 7차전이라 해도 신경쓰지 않을 배짱이 있었다면, 아니 그 모든 것을 제외하고서라도 100마일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존에 꽂아 넣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지금 당신처럼 "유의미하지만 부질없는" 회의에 빠져 있었을까. 내야의 수비위치를 확인하고, 어디까지 얻어맞아도 좋을지를 판단하기 위해 외야수를 힐끔 돌아보고, 뭔가 기적 같은 사인을 기대하며 벤치를 한번 쳐다보고, 끝내 "안전한 도피"로서 포수가 보내는 직구에도, 커브에도, 슬라이더에도, 포크 리드에도 모두 고개만 내저으며 타임아웃이 없는 이 빌어먹을 경기와 자신의 롤에 내재한 구조적 불합리성에 대해 열심히 불평하기 시작하고 있었을까.

아니, 지금쯤 청소년기 특유의 도발적 심리충동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당신에게. 투수는 "마운드를 내려갈 때까지" 공을 던지지만, "마운드에 오르기 위해"  더 많은 공을 던진다는 것을 너무 자주 잊는 당신에게. 앞으로는 잊지 말자. 당신이나 내가 고민하고, 행동하고, 좌절하거나, 성공하거나, 미쳐 날뛰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살 수는 있다. 다만 당신은 질적으로든, 양적으로든 "더" 살기 위해 허우적리며 살아대는 중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래. 당신은 갓 수능을 마친 학생에 불과하다. 스터프보다 포텐셜을 주장하고 싶다. 하지만 자신은 없다. 사실 보여준 건 없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아마추어 시절의 무절제한 격려와, 무책임한 찬사가 지금은 더욱 목마르다. 수능이라는 첫 등판에서 퀄리티 스타트를 간신히 기록한 당신은, 다음 경기보다 다음 인터뷰를 더욱 서두르고 싶다. 올라가 보지는 않았지만, 내려온 다음을 이야기하며 올라가는 그 순간을 좀 더 미화하고, 가능하다면 한껏 연장하고 싶어한다.

그래, 당신은 두려워하며 고개를 가로젓는 것 이외에, 이기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당신은 한계를 이야기한다. 넘을 수 없다는 4차원의 벽을, 3차원의 세계에 사는 십대가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나는 놀랍다. 대부분의 사람들은(물론 지금의 당신을 포함해서), 자신의 진정한 한계를 찾기 이전에, 일단 저만치에 선을 하나 그어둔다. 그리고 평생 그 한계까지만 타오르고 만다. 그 불완전연소의 흔적들이 정확히 미리 그어둔 선과 일치하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타인과 타협하는 것은 그것을 직업으로 삼는 이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 자신과 쉽게 타협할 수 있다. 마치 지금의 당신처럼. 자신에게 반항하지 못하는 자신을 억누르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대한민국의 도심에는 평탄한 각도의 바람이 불어온다. 십대 마지막의 겨울에, 당신은 어느 값싸고 아름다우며, 몹시 쉬운 포기와 아쉬움을 몇 방울 향수처럼 뿌리고 거리를 헤맬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그렇던걸, 세상은 다 그래. 사는 게 그렇지 뭘. 그리고 당신은 이 단단한 세상의 바람에 정면으로 가슴을 갖다대고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훗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건 교과서에나 존재하는 이야기라고.

흔하거나, 혹은 흔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우스운 일이다. 교과서가 항상 옳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교과서에 있는 말이라고 해서, 너무 자주 들어왔던 말이라고 해서 그것이 옳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

혹시 비선형 방정식에 처음 접근하는 이야기를 알고 있는가? 손바닥 위에 물을 떨어뜨리면, 물방울이 어디로 흐를지 선형 방정식으로는 예측할 수 없었다. "예측 가능한 미래"라는 현대 고등학생 수준의 과학이 가진 비전을, 괴델이 무참히 살해한 후였다. 하지만 어쨌든 그 물방울은 손바닥을 따라 움직일 것이었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다음 타자의 배트 스피드를, 선구안을, 스퀴즈 플레이를 예측할 수는 없어도, 어쨌든 "넘을 수 있는 3차원의" 방망이를 지나고 나면 분명히 사각형의 스트라이크 존이 존재하는 것이었고, 그럼으로써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어 경기를 끝낼 수 있는 것이었다. 혼돈 이론의 첫 프랙탈은 그렇게 시작했다.

나는 동정이나 경멸과 같은, 감정이라기보다는 평가에 가까운 인간 이성의 경향에 우호적이지 않다. 따라서 나는 당신이라면 할 수 있을 것이라거나, 당신은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고민하고 시도해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적어도 누군가는 그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음을 안다. 혹은, 믿는다. 아마 그것은 당신이 믿는다고 말한 가능성이라는 것과 매우 닮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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