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성폭력 학칙제정 관련 각 학교들의 이야기
by 세로토닌 | 2010년 2월 10일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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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성폭력 학칙제정 운동을 되돌아보며 - 외대 13대 여학생위원회 두나
2000년 외대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운동을 진행해 학칙 제정이라는 성과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가시적인 효과를 빼면, 실제로 일상적인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 과연 얼마나 높아졌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외대에서는 생소한 성폭력 담론을 처음 대중적으로 전개했기 때문에 일단 끌어들이는 분위기는 부풀었지만, 특히 성폭력 재개념화에 대해서 좀처럼 납득을 하지 못하고 실명공개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나타내며 가해자의 인권을 부르짖곤 하였다. 심지어 모단대 학생회장은 피해자 위주 원칙의 설명을 듣더니 갑자기 옆에 있던 여학생 집행부의 손을 덥석 잡고 "야! 이것도 성폭력이냐?"고 물으며 비아냥거리는 등, 이런 사례들은 책 한권을 써도 모자랄 것이다.
시비만 걸려는 유아들을 붙잡고 설득하려면 짜증밖에 나는 게 없다. 그러나 화장실 설문지와 성폭력 기획대자보는 여학우들의 잊고 싶던 공통경험을 끌어내어 이론과 연계하는 데 성공한 좋은 방법이었다. 분노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게 역력히 드러날 정도였다. 3월 말에 '학내 성폭력 근절 학칙제정을 위한 외대 운동본부'를 꾸림으로써 상당히 버거운 작업량과 대중사업을 무사히 소화하고 내부교양으로 이론을 좀더 탄탄히 다졌다.(빈도가 높은 연습문제들을 뽑아 실전에 대비하기도 했다. '쳐다만 봐도 성폭력입니까?' '여자가 고의로 성폭력사건을 조작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등등)
운동본부는 강연회, 모의재판과 공청회, 서명운동, 뺏지판매, 대동제 선전전 등 본격적으로 대중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중, 실제사례에다 구체성을 덧붙인 대본을 운동본부원들이 며칠동안 외우고 연습해서 모의재판을 꾸몄는데, 학우들이 배심원이 되어 직접 판결하는 형식으로 참여를 유도하려고 애썼다. (그 때 뻔뻔스러운 가해자 역할을 애드립까지 넣어가며 마치 자신의 본성처럼 연기했던 본부원은 그 뒤 완전히 얼굴이 찍혔다 한다) 이처럼 힘닿는대로 여러가지 했지만 무엇보다 조직이 부족했고 운동의 효과가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진 못했다. 화장실 설문조사 해보면 아무것도 눈에 안띄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1학기 말 대학 평의원회에서 반성폭력 학칙제정이 안건으로 올려졌고 그 때부터가 길고도 지루한 협상과정의 시작이었다. 2학기 말에야 협상이 종결되었다. 가장 아쉬운 점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학칙에서 완전히 실현하지 못한 것이다. 사전 작업이 더욱 중요한 것이 협상인 것 같다. 협상에 앞서 미리 다양한 대안적인 안들을 준비해 두는 것이 좋으며, 학생처 사람에게 때에 따라 살벌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이 학칙을 계기로 지금부터 들어오는 새내기들에게 무엇이 성폭력인지부터 확실하게 알려야 한다. 그때부터가 진정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일은 새터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내규제정 움직임을 만들면서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학생회 역할 강제-먼저 성폭력 재생산의 금지부터-를 위한 싸움이 될 것이다.
고려대학교 반성폭력 학칙 제정 운동 정리문
발신: 8대 여위 모래
일시: 01. 02. 03
관악에서 성폭력 학칙 및 자치규약 운동이 불거지면서 고대에서도 이를 본받아 법대, 경대 여학생회는 각기 단대 성폭력 자치규약 제정 운동을, 여위는 성폭력 학칙 제정 운동을 담당하게 된다. 이전에는 성폭력의 개념을 알리고 반대 의지를 표명하는 활동이 주였으나 98년도 김지욱 총학생회장 성폭력이 실명사과와 함께 공개되면서 학내에 학칙 제정 운동의 흐름이 거세지기 시작하였다.
98년 10월 6대 여위에서는 학칙제정운동주간을 선포하고 기획단과 함께 것대학내 성적 자기결정권 확보를 위한 지침서겄 발간과 함께 것성폭력 근절을 위한 학칙제정 공청회겄를 개최하였다. 성폭력 연대회의의 98년 공청회에서 제안한 학칙 가안과 관악 여모의 학칙 가안을 토대로 만들어진 학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학칙(가안)은 이후 여위의 주도하에 안암여학생연대회의에서 1차 수정을 거쳤다. 그나마 99년 총학과의 불협화음으로 여위의 학칙 제정 운동이 침체기에 들어서면서 반성폭력 학칙 제정 운동은 그 힘을 많이 소실하게 된다.
00년도 8대 여위에서는 오랜 기간 반성폭력 학칙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점을 반성, 반성폭력 학칙 제정을 중심 기조로 설정하였다. 이후 4월 여위에서는 학우들과의 소통 부재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학생회와의 연대를 통해 학칙 제정 운동에 큰 흐름을 만든다는 목적 하에 중앙운영위원회에 것반성폭력 학칙준비위원회겄를 제안하였다. 학준위를 제안한 배경에는 여위가 제안하는 반성폭력 학칙 제정은 학교측의 반응을 이끌어내기에 너무나 미약할 것이라는 소극적 판단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여위에서 제안한 학칙 제정 논의는 쉽게 무시되리라 생각했고 여기에는 안여연 이상의, 직선 간부를 통한 힘 실어주기가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규정안이 학생대표를 필요로 하고 이를 위한 논의에서도 학생이 배제될 수 없기 때문에 학생회 단위의 힘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학칙 제정 운동에 대한 계속적인 소통을 전제하고 학교측에 논의를 제안할 때에만 중운위나 총학생회와 연대 제안하는 것도 가능한 방법이었다.
처음 학준위를 제안했을 때는 학생회의 협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판단이었지만 결론적으로 학생회와의 연대가 중요했던 이유는 그들의 힘보다 그들과 함께 학칙 제정의 과정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학준위는 각 단대에서 모인 학칙을 중심적으로 고민하는 위원이 여위와 함께 소통한 내용이 그 위원을 통해 다시 단대로 내려가 학우들과 소통된다는 네트워크를 의미했다. 즉, 한명의 학준위 위원이 아니라 그를 통한 단대 내의 소통과 참여, 의견 수렴을 목적으로 하였으나 각 단대 학생회는 학칙 제정 운동을 외면할 수 없다는 정의감(혹은 자존심, 의무감)에 위원을 파견하는 것으로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 듯하다. 학생회에서 학칙 제정과 학준위를 그들의 일로 생각하지 않는데 학준위 위원 혼자 단운위에서 학준위 결정 사항을 보고하고 논의와 행동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었다. 학준위 중간 평가서에 따르면 학준위의 태생적 문제점을 쌁 학생회의 비협조와 쌂 여위의 무계획성이라고 정리하고 있으나 00년 학칙 제정 운동을 평가하며 다시 정리하는 학준위의 태생적 한계란 학칙 제정과 성폭력 근절을 그들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 학준위 위원을 구성하는 데에만 급급하는 학생회들과 연대했다는 점이다. 또한 연대한 여성운동 단위의 경우에도 성폭력과 반성폭력 학칙 제정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거나 의무감에서 연대했을 뿐 학칙 제정 운동을 자단위의 사업으로 고려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학준위에서 논의된 내용은 단위에서 소통되지 않았고 수동적인 결합이라는 고질적 문제점이 다시 그대로 발생하였다.
4월 말 발족된 학준위는 1학기에 설문조사, 선전전 등의 사업을 간간히 진행하였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학준위의 힘이 워낙 미약하여 여위는 주로 학준위를 유지하는데 대부분의 힘을 쏟았다. 이처럼 학칙 운동이 계획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에 학준위에서는 9월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는 앞으로 학준위의 건설과 학칙 제정 운동에 계속적인 힘을 실을 것을 결의하는 결의문을 통과시켜 미래를 대비했으며 선거철에는 각 단대 학생회에 01년 학준위 결합을 약속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하였다.
(1) 규정(안) 제정 논의
7월까지 가안을 다시 한번 수정하여 학교측에 보내고 10월 드디어 반응을 얻어내었다. 학생처에서는 학칙 제정을 위해 어떠한 단계를 밟아야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문을 구하는 형식으로 기획처에 가안 작성을 부탁한 후 이를 학교측 초안이라고 여위에 전달한 것이다. 이 가안은 서울대학교 규정안을 거의 대부분 수용하고 있었으며 문제의 소지가 많아 여위와 학준위에서는 반대입장을 밝혔으며 학생처에서 발의하여 기획처에서 이를 받아들인다던가 등의 절차를 겪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3자 논의 테이블에서 결국 다시 처음부터 절차를 밟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2) 학칙 제정을 위한 공청회
10월 여성해방제의 한 텀으로 학칙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내용적으로 98년도 공청회와 비교했을 때, 98년도 공청회는 처음 시작하는 학칙 제정 운동에 힘을 실어주고 중요성을 각인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00년 공청회는 반성폭력 학칙을 좀 더 학우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과 가안의 발전이 있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공청회 자체에서는 발전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보다는 몇몇 질문에 공청회팀이 답하고 거의 당연하게 수용되는 분위기가 연출되어 별 효과가 적었다.
현재 학교측에서는 독립적 위상을 가진 성폭력 상담소에 대한 요구를 받아들여 성폭력 상담소 신설을 위한 과정을 밟고 있다. 성폭력 상담소가 신설된 이후 사건 처리에 필요한 규정(안) 제정을 위한 위원회가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학칙제정 사례
서울대 반성폭력 학칙 제정 운동 과정
- 『서울대 성희롱·성폭력 예방과 처리에 관한 규정(안)』이 완성되기까지.
관악여성모임연대 집행부 이김보명
0. 학칙의 필요성이 제기되다.
학내에서 처음으로 성폭력 관련 규정과 전담기구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시기는 93년 신교수 사건을 계기로 꾸려진 공동대책위 활동 시기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학내에서 반성폭력담론을 주도할 수 있는 여성주의적 세력이 미약했고 본부측 역시 신교수 사건 외에도 많은 (교수) 성폭력 사건이 학내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였기 때문에 학칙은 학교측의 완강한 반대와 그에 대응할 현실적인 역량의 부족으로 그 제정의 시기가 유보되었다.
그러나 93년-95년 사이의 신교수사건 공대위의 활동 그리고 96년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 97년 약대 구교수 사건 등을 통하면서 그간 학내에서는 여성운동 모임들이 기반을 갖추기 시작했고 그와 더불에 반성폭력 담론의 기반도 조금씩 다져지게 되었다.
본격적인 학칙제정 운동은 97년 2학기의 총학생회 선거 시기를 통해 시작되었다. 당시 관악여성모임연대(이하 관악여모)는 모든 선본에 반성폭력학칙제정은 다음 해 총학 사업으로 추진할 것은 제안했으며 이에 모든 선본들의 공약으로 것반성폭력학칙제정겄이 약속되었다.
다음해인 98년은 관악여모와 총학생회의 주도, 그리고 각 단대학생회와 각 단대여성모임의 활동 속에서 반성폭력운동이 본격적으로 학내에서 드러난 시기다.
1. 우리들 안에서부터 - 단대 학생회칙 및 자치규약 제정
98년의 반성폭력운동은 학교측을 대상으로 하는 학칙제정의 요구와 더불어 각 단대에서 진행된 반성폭력 내규 혹은 학생회칙 정립을 위한 대중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98년 4월 사회대에서는 활동단 체계를 통해 반성폭력 회칙의 필요성을 선전하고 학우들의 총투표를 통해 학생회칙에 반성폭력관련 규정을 포함하였다.
그 외 인문대와 공대, 자연대 등에서도 같은 흐름이 있었으며 각각 내규나 회칙 등을 통해 반성폭력 규정을 만들어 갔으며 그 방식은 앞서 말한 총투표 형식(주로 학생회칙으로 진행될 때)도 있었지만 자체 토론회나 담론 형성을 통한 자치규약 제정도 있었다.
이같은 성과는 이후 학내여성운동 단위에서 성폭력사건을 접수받고 처리하는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실질적인 규정이 있었기에 그에 따라 비대위를 구성하고 사건을 조처할 수 있는 기준이 생기기도 하였고 또한 이같은 제정과정을 통해 학생사회에서 반성폭력운동이 급진적으로 확산되고 있었기에 실제로 사건이 신고되고 처리되는 횟수와 수준 또한 급속히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학내에서는 반성폭력운동의 담론이 실질적으로 팽창할 수 있었다. 추상적인 혹은 도덕적인 반성폭력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성폭력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그리고 성폭력의 판단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왜 피해자중심주의자 확보되어야 하는지, 나아가 왜 성폭력사건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한지 등에 대한 활발한 토론과 논의를 통해 공동체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과정이 각 단대에서의 학생회칙과 자치규약 제정을 통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3년이 지난 지금 현실적으로 내규나 회칙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한계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터나 현장활동 등을 위한 반성폭력내규를 제정할 때 지금까지 쌓여온 문제의식들이 크게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반성폭력운동은 제도적 결과물에 놓인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합의해 내는 과정과 활동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서울대 모든 구성원을 포괄하기 위하여 - 학칙제정
학칙은 서울대 모든 구성원을 포괄하고 필요에 따라 강제적인 조치들을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규정을 만들기 위해 제기되었다. 그 시작은 앞서 말했듯이 신교수 사건, 구교수 사건 등으로 인해 불거진 교수-학생간 성폭력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학생사회의 성폭력은 앞서 말한 학생회칙이나 내규 등을 통해 자율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반면 교수·교직원 성폭력 문제는 학생들의 자치적인 역량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학생사회의 성폭력을 자치적으로 해결하는 것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증가하는 사건의 신고와 높아지는 피해자들의 의식수준 그리고 요구사항 등을 생각할 때 언제까지나 학내 여성단위에서 성폭력사건을 해결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학칙은 이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효과를 가진다. 보다 정교하게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전문성과 물질적인 기반이 있으며, 교수·교직원 등의 구성원까지 포괄할 수 있는 장점과 필요시 강제적인 조처를 취할 수 있는 규제력이 있다.
3. 학칙제정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사실 관악의 학칙제정과정은 3년 가까이 계속되는 흐름 속에서 계속해서 활동주체가 변화해 왔기에 그 생생한 제정과정이나 구체적인 어려움 등에 대한 내용은 대부분 활동주체의 이월과 함께 어디론가 증발해버린 것들이 많다.
(1) 학칙제정과정에서의 쟁점
① 이름 만들기
지금의 서울대 학칙은 『서울대 성희롱·성폭력 예방과 처리에 관한 규정(안)』이라는 긴 이름을 갖고 있다. 우선 성폭력 관련 예방 및 처리 모두를 포괄하는 규정으로서 학칙의 위상을 갖춘 것은 바람직하다. 이에 준해 학내 성희롱·성폭력 상담소에서는 사건 처리뿐만 아니라 확장된 반성폭력운동을 독자적으로 기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것성희롱·성폭력겄이라는 애매하고 번거로운 이름이다. 이는 것성폭력겄으로 개념을 통합하려는 학생측의 의견과 것성폭력은 너무 과격하다겄 는 소심함 및 것법률에서는 성희롱을 쓴다겄는 소박한 학교측의 발상이 지난하게 부딪쳐 온 합작물이다.
사실 이름이 별거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스운 결과물이 여실히 드러내는 성폭력에 대한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반응을 알 수 있다. 것폭력겄과 것희롱겄을 구분하는 그 태도에는 성폭력에 대한 것객관적겄 처리를 목적으로 하는 본부측의 시각이 담겨 있다고 생각된다.
② 성폭력의 범위 및 판단기준
지난 3년간의 반성폭력의 운동의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무엇보다도 것성폭력 개념의 확장 및 피해자중심주의 확립겄이라 평가할 수 있다. 물리적인 성폭력만을 상정하던 협소한 인식에서 언어성폭력, 시선폭력, 집단적 놀이문화에서 나타나는 성폭력, 스토킹, 사이버 성폭력 그리고 여성차별 사안에까지 성폭력이란 이름이 따라붙게 되었다.
서울대의 학칙에서는 성폭력 기준을 것피해자의 성적수치심 및 혐오감겄으로 설명하고 구체적인 성폭력 유형으로 4가지를 제시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학내에서 일어나는 여성차별 행위의 일부분까지 포함하고 있다.
특히 성폭력의 기준을 피해자의 주관적 판단에 놓는 것은 본부측은 물론 학생대중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논란을 낳은바 있는데 이는 피해자를 것과도하게 예민한 여성겄의 모습으로 규정하는 전형적인 편견을 반영하는 반응이었다. 또한 것법적인 중립성과 객관성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부측의 입장은 끝끝내 충돌지점으로 남아 마지막의 상담소 시행세칙 제정 과정에서도 것사건공개겄에 대한 강경한 반대로 나타나게 되었다.
(2) 학생사회의 전략
학칙제정의 초기과정은 권위적인 본부측과의 소모적인 말싸움에 상당한 역량을 소비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애초에 학칙제정의 필요성조차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본부측의 상대로 학칙의 필요성은 물론 그 구체적인 내용과 기준에 대한 합의까지 이끌어내는 것은 엄청난 역량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으며 결과적으로 3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학칙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본부측과의 논의테이블에서 열세에 놓일 수밖에 없는 학생측의 전략은 것학생사회에서의 담론형성을 통한 압력넣기겄였다. 98년의 단대별 학생회칙 및 내규제정을 통한 반성폭력운동 과정과 99년의 것바로지금겄 활동단의 성과는 실제로 본부측의 입장이 변하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98년의 학칙제정활동단이 만들어내는 4000이 넘는 결의서명을 비롯한 다양한 대중적 성과물은 본부측이 학생측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게 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3) 학칙의 내용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지점들
학칙은 무엇보다 그 것적용범위겄(성폭력의 범위, 학칙의 적용대상이 되는 학내구성원의 범위)와 사건에 대한 것처리규정겄을 세심하고 정확하게 규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성폭력의 범위를 가능한 넓게 확장하는 것, 그리고 학칙의 적용대상을 명확히 하여 학내 모든 구성원이 성폭력문제에 대해서는 학칙에 의한 법적 효력을 행사하고 적용받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성폭력 판단기준에 피해자중심주의를 최대한 반영하고, 사건처리과정에서도 피해자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는 일관된 통로를 보장하는 것, 그리고 사건처리 기간중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조치들을 확립하는 것 등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상담소나 기타 관련기구를 만들 때에는 그 조직을 명료하게 구성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서울대의 경우 상담소장과 부소장, 운영위원, 조사위원, 상근자 등으로 상담소의 조직이 구성된다. 운영위원회는 상담소의 운영 및 상담소 시행세칙의 개정 등을 담당하는 기구이며 조사위원회는 실제로 접수된 사건을 처리하는 실무기구이다.
복잡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조사위원의 전문성과 독립성, 그리고 안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학내에서 전문적인 조사위원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외부 전문가를 포함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조사위원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확보하고 일정정도의 경제적 보상을 본부측에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상담소에서 신고를 받고 실무를 담당하는 상근자의 경우 그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한데 가능한 것여성주의적 시각겄 및 것성폭력관련 활동경험겄 등을 상근자의 자질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학교기구의 경우 대부분 석·박사를 기준으로 뽑는 경우가 많은데 기존의 석·박사 범위 내에서 위의 기준을 만족할 수 없는 경우라면 그같은 것객관적겄인 지표를 낮추더라도 실질적인 역량을 갖춘 상근자를 확보하도록 학교측을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4. 상담소의 권한확장 및 독립성 확보
서울대의 경우 여전히 남아있는 과제 중의 하나는 상담소를 학생생활연구소로부터 독립시켜 독자적인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재정과 인력이 부족하다면 상담소는 애초에 목적으로 한 전문적인 사건처리 및 반성폭력 사업 등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게 되는데 이같은 결과는 실제로도 우려되는 지점 중의 하나다.
특히 피해자 상담과 가해자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전문상담자들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도 시급한 일인데 막상 그에 필요한 비용이나 행정적인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애초에 확실한 재정확보와 독립성을 담보로 하는 상담소 개소를 추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기반을 만들어두는 것이 필요하고 동시에 상담소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그같은 합의를 유지시켜 가는 것도 중요하다.
학칙은 학칙일 뿐이다. 반성폭력운동의 제도화과정이 마무리되는 것은 그 어수선한 뒷모습에도 불구하고 반갑다. 이제 새로운 반성폭력운동을 만들어 갈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간 학내 여성운동 진영의 역량이 상당부분 학칙제정으로 집중된 경향을 보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제는 그 부담으로부터 어느정도 벗어나 훨씬 더 급진적이고 자유로운 운동을 만들어갈 수 있는 그리고 그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음을 생각한다.
부디, (분량은 넘겼지만) 짧은 글이 다른 곳의 여성주의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2000년 외대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운동을 진행해 학칙 제정이라는 성과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가시적인 효과를 빼면, 실제로 일상적인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 과연 얼마나 높아졌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외대에서는 생소한 성폭력 담론을 처음 대중적으로 전개했기 때문에 일단 끌어들이는 분위기는 부풀었지만, 특히 성폭력 재개념화에 대해서 좀처럼 납득을 하지 못하고 실명공개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나타내며 가해자의 인권을 부르짖곤 하였다. 심지어 모단대 학생회장은 피해자 위주 원칙의 설명을 듣더니 갑자기 옆에 있던 여학생 집행부의 손을 덥석 잡고 "야! 이것도 성폭력이냐?"고 물으며 비아냥거리는 등, 이런 사례들은 책 한권을 써도 모자랄 것이다.
시비만 걸려는 유아들을 붙잡고 설득하려면 짜증밖에 나는 게 없다. 그러나 화장실 설문지와 성폭력 기획대자보는 여학우들의 잊고 싶던 공통경험을 끌어내어 이론과 연계하는 데 성공한 좋은 방법이었다. 분노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게 역력히 드러날 정도였다. 3월 말에 '학내 성폭력 근절 학칙제정을 위한 외대 운동본부'를 꾸림으로써 상당히 버거운 작업량과 대중사업을 무사히 소화하고 내부교양으로 이론을 좀더 탄탄히 다졌다.(빈도가 높은 연습문제들을 뽑아 실전에 대비하기도 했다. '쳐다만 봐도 성폭력입니까?' '여자가 고의로 성폭력사건을 조작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등등)
운동본부는 강연회, 모의재판과 공청회, 서명운동, 뺏지판매, 대동제 선전전 등 본격적으로 대중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중, 실제사례에다 구체성을 덧붙인 대본을 운동본부원들이 며칠동안 외우고 연습해서 모의재판을 꾸몄는데, 학우들이 배심원이 되어 직접 판결하는 형식으로 참여를 유도하려고 애썼다. (그 때 뻔뻔스러운 가해자 역할을 애드립까지 넣어가며 마치 자신의 본성처럼 연기했던 본부원은 그 뒤 완전히 얼굴이 찍혔다 한다) 이처럼 힘닿는대로 여러가지 했지만 무엇보다 조직이 부족했고 운동의 효과가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진 못했다. 화장실 설문조사 해보면 아무것도 눈에 안띄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1학기 말 대학 평의원회에서 반성폭력 학칙제정이 안건으로 올려졌고 그 때부터가 길고도 지루한 협상과정의 시작이었다. 2학기 말에야 협상이 종결되었다. 가장 아쉬운 점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학칙에서 완전히 실현하지 못한 것이다. 사전 작업이 더욱 중요한 것이 협상인 것 같다. 협상에 앞서 미리 다양한 대안적인 안들을 준비해 두는 것이 좋으며, 학생처 사람에게 때에 따라 살벌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이 학칙을 계기로 지금부터 들어오는 새내기들에게 무엇이 성폭력인지부터 확실하게 알려야 한다. 그때부터가 진정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일은 새터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내규제정 움직임을 만들면서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학생회 역할 강제-먼저 성폭력 재생산의 금지부터-를 위한 싸움이 될 것이다.
고려대학교 반성폭력 학칙 제정 운동 정리문
발신: 8대 여위 모래
일시: 01. 02. 03
관악에서 성폭력 학칙 및 자치규약 운동이 불거지면서 고대에서도 이를 본받아 법대, 경대 여학생회는 각기 단대 성폭력 자치규약 제정 운동을, 여위는 성폭력 학칙 제정 운동을 담당하게 된다. 이전에는 성폭력의 개념을 알리고 반대 의지를 표명하는 활동이 주였으나 98년도 김지욱 총학생회장 성폭력이 실명사과와 함께 공개되면서 학내에 학칙 제정 운동의 흐름이 거세지기 시작하였다.
98년 10월 6대 여위에서는 학칙제정운동주간을 선포하고 기획단과 함께 것대학내 성적 자기결정권 확보를 위한 지침서겄 발간과 함께 것성폭력 근절을 위한 학칙제정 공청회겄를 개최하였다. 성폭력 연대회의의 98년 공청회에서 제안한 학칙 가안과 관악 여모의 학칙 가안을 토대로 만들어진 학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학칙(가안)은 이후 여위의 주도하에 안암여학생연대회의에서 1차 수정을 거쳤다. 그나마 99년 총학과의 불협화음으로 여위의 학칙 제정 운동이 침체기에 들어서면서 반성폭력 학칙 제정 운동은 그 힘을 많이 소실하게 된다.
00년도 8대 여위에서는 오랜 기간 반성폭력 학칙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점을 반성, 반성폭력 학칙 제정을 중심 기조로 설정하였다. 이후 4월 여위에서는 학우들과의 소통 부재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학생회와의 연대를 통해 학칙 제정 운동에 큰 흐름을 만든다는 목적 하에 중앙운영위원회에 것반성폭력 학칙준비위원회겄를 제안하였다. 학준위를 제안한 배경에는 여위가 제안하는 반성폭력 학칙 제정은 학교측의 반응을 이끌어내기에 너무나 미약할 것이라는 소극적 판단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여위에서 제안한 학칙 제정 논의는 쉽게 무시되리라 생각했고 여기에는 안여연 이상의, 직선 간부를 통한 힘 실어주기가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규정안이 학생대표를 필요로 하고 이를 위한 논의에서도 학생이 배제될 수 없기 때문에 학생회 단위의 힘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학칙 제정 운동에 대한 계속적인 소통을 전제하고 학교측에 논의를 제안할 때에만 중운위나 총학생회와 연대 제안하는 것도 가능한 방법이었다.
처음 학준위를 제안했을 때는 학생회의 협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판단이었지만 결론적으로 학생회와의 연대가 중요했던 이유는 그들의 힘보다 그들과 함께 학칙 제정의 과정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학준위는 각 단대에서 모인 학칙을 중심적으로 고민하는 위원이 여위와 함께 소통한 내용이 그 위원을 통해 다시 단대로 내려가 학우들과 소통된다는 네트워크를 의미했다. 즉, 한명의 학준위 위원이 아니라 그를 통한 단대 내의 소통과 참여, 의견 수렴을 목적으로 하였으나 각 단대 학생회는 학칙 제정 운동을 외면할 수 없다는 정의감(혹은 자존심, 의무감)에 위원을 파견하는 것으로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 듯하다. 학생회에서 학칙 제정과 학준위를 그들의 일로 생각하지 않는데 학준위 위원 혼자 단운위에서 학준위 결정 사항을 보고하고 논의와 행동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었다. 학준위 중간 평가서에 따르면 학준위의 태생적 문제점을 쌁 학생회의 비협조와 쌂 여위의 무계획성이라고 정리하고 있으나 00년 학칙 제정 운동을 평가하며 다시 정리하는 학준위의 태생적 한계란 학칙 제정과 성폭력 근절을 그들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 학준위 위원을 구성하는 데에만 급급하는 학생회들과 연대했다는 점이다. 또한 연대한 여성운동 단위의 경우에도 성폭력과 반성폭력 학칙 제정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거나 의무감에서 연대했을 뿐 학칙 제정 운동을 자단위의 사업으로 고려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학준위에서 논의된 내용은 단위에서 소통되지 않았고 수동적인 결합이라는 고질적 문제점이 다시 그대로 발생하였다.
4월 말 발족된 학준위는 1학기에 설문조사, 선전전 등의 사업을 간간히 진행하였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학준위의 힘이 워낙 미약하여 여위는 주로 학준위를 유지하는데 대부분의 힘을 쏟았다. 이처럼 학칙 운동이 계획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기에 학준위에서는 9월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는 앞으로 학준위의 건설과 학칙 제정 운동에 계속적인 힘을 실을 것을 결의하는 결의문을 통과시켜 미래를 대비했으며 선거철에는 각 단대 학생회에 01년 학준위 결합을 약속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하였다.
(1) 규정(안) 제정 논의
7월까지 가안을 다시 한번 수정하여 학교측에 보내고 10월 드디어 반응을 얻어내었다. 학생처에서는 학칙 제정을 위해 어떠한 단계를 밟아야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문을 구하는 형식으로 기획처에 가안 작성을 부탁한 후 이를 학교측 초안이라고 여위에 전달한 것이다. 이 가안은 서울대학교 규정안을 거의 대부분 수용하고 있었으며 문제의 소지가 많아 여위와 학준위에서는 반대입장을 밝혔으며 학생처에서 발의하여 기획처에서 이를 받아들인다던가 등의 절차를 겪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3자 논의 테이블에서 결국 다시 처음부터 절차를 밟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2) 학칙 제정을 위한 공청회
10월 여성해방제의 한 텀으로 학칙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내용적으로 98년도 공청회와 비교했을 때, 98년도 공청회는 처음 시작하는 학칙 제정 운동에 힘을 실어주고 중요성을 각인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00년 공청회는 반성폭력 학칙을 좀 더 학우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과 가안의 발전이 있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공청회 자체에서는 발전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보다는 몇몇 질문에 공청회팀이 답하고 거의 당연하게 수용되는 분위기가 연출되어 별 효과가 적었다.
현재 학교측에서는 독립적 위상을 가진 성폭력 상담소에 대한 요구를 받아들여 성폭력 상담소 신설을 위한 과정을 밟고 있다. 성폭력 상담소가 신설된 이후 사건 처리에 필요한 규정(안) 제정을 위한 위원회가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학칙제정 사례
서울대 반성폭력 학칙 제정 운동 과정
- 『서울대 성희롱·성폭력 예방과 처리에 관한 규정(안)』이 완성되기까지.
관악여성모임연대 집행부 이김보명
0. 학칙의 필요성이 제기되다.
학내에서 처음으로 성폭력 관련 규정과 전담기구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시기는 93년 신교수 사건을 계기로 꾸려진 공동대책위 활동 시기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학내에서 반성폭력담론을 주도할 수 있는 여성주의적 세력이 미약했고 본부측 역시 신교수 사건 외에도 많은 (교수) 성폭력 사건이 학내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였기 때문에 학칙은 학교측의 완강한 반대와 그에 대응할 현실적인 역량의 부족으로 그 제정의 시기가 유보되었다.
그러나 93년-95년 사이의 신교수사건 공대위의 활동 그리고 96년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 97년 약대 구교수 사건 등을 통하면서 그간 학내에서는 여성운동 모임들이 기반을 갖추기 시작했고 그와 더불에 반성폭력 담론의 기반도 조금씩 다져지게 되었다.
본격적인 학칙제정 운동은 97년 2학기의 총학생회 선거 시기를 통해 시작되었다. 당시 관악여성모임연대(이하 관악여모)는 모든 선본에 반성폭력학칙제정은 다음 해 총학 사업으로 추진할 것은 제안했으며 이에 모든 선본들의 공약으로 것반성폭력학칙제정겄이 약속되었다.
다음해인 98년은 관악여모와 총학생회의 주도, 그리고 각 단대학생회와 각 단대여성모임의 활동 속에서 반성폭력운동이 본격적으로 학내에서 드러난 시기다.
1. 우리들 안에서부터 - 단대 학생회칙 및 자치규약 제정
98년의 반성폭력운동은 학교측을 대상으로 하는 학칙제정의 요구와 더불어 각 단대에서 진행된 반성폭력 내규 혹은 학생회칙 정립을 위한 대중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98년 4월 사회대에서는 활동단 체계를 통해 반성폭력 회칙의 필요성을 선전하고 학우들의 총투표를 통해 학생회칙에 반성폭력관련 규정을 포함하였다.
그 외 인문대와 공대, 자연대 등에서도 같은 흐름이 있었으며 각각 내규나 회칙 등을 통해 반성폭력 규정을 만들어 갔으며 그 방식은 앞서 말한 총투표 형식(주로 학생회칙으로 진행될 때)도 있었지만 자체 토론회나 담론 형성을 통한 자치규약 제정도 있었다.
이같은 성과는 이후 학내여성운동 단위에서 성폭력사건을 접수받고 처리하는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실질적인 규정이 있었기에 그에 따라 비대위를 구성하고 사건을 조처할 수 있는 기준이 생기기도 하였고 또한 이같은 제정과정을 통해 학생사회에서 반성폭력운동이 급진적으로 확산되고 있었기에 실제로 사건이 신고되고 처리되는 횟수와 수준 또한 급속히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학내에서는 반성폭력운동의 담론이 실질적으로 팽창할 수 있었다. 추상적인 혹은 도덕적인 반성폭력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성폭력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그리고 성폭력의 판단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왜 피해자중심주의자 확보되어야 하는지, 나아가 왜 성폭력사건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한지 등에 대한 활발한 토론과 논의를 통해 공동체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과정이 각 단대에서의 학생회칙과 자치규약 제정을 통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3년이 지난 지금 현실적으로 내규나 회칙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한계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터나 현장활동 등을 위한 반성폭력내규를 제정할 때 지금까지 쌓여온 문제의식들이 크게 뒷받침하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반성폭력운동은 제도적 결과물에 놓인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합의해 내는 과정과 활동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서울대 모든 구성원을 포괄하기 위하여 - 학칙제정
학칙은 서울대 모든 구성원을 포괄하고 필요에 따라 강제적인 조치들을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규정을 만들기 위해 제기되었다. 그 시작은 앞서 말했듯이 신교수 사건, 구교수 사건 등으로 인해 불거진 교수-학생간 성폭력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학생사회의 성폭력은 앞서 말한 학생회칙이나 내규 등을 통해 자율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반면 교수·교직원 성폭력 문제는 학생들의 자치적인 역량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학생사회의 성폭력을 자치적으로 해결하는 것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증가하는 사건의 신고와 높아지는 피해자들의 의식수준 그리고 요구사항 등을 생각할 때 언제까지나 학내 여성단위에서 성폭력사건을 해결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학칙은 이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효과를 가진다. 보다 정교하게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전문성과 물질적인 기반이 있으며, 교수·교직원 등의 구성원까지 포괄할 수 있는 장점과 필요시 강제적인 조처를 취할 수 있는 규제력이 있다.
3. 학칙제정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사실 관악의 학칙제정과정은 3년 가까이 계속되는 흐름 속에서 계속해서 활동주체가 변화해 왔기에 그 생생한 제정과정이나 구체적인 어려움 등에 대한 내용은 대부분 활동주체의 이월과 함께 어디론가 증발해버린 것들이 많다.
(1) 학칙제정과정에서의 쟁점
① 이름 만들기
지금의 서울대 학칙은 『서울대 성희롱·성폭력 예방과 처리에 관한 규정(안)』이라는 긴 이름을 갖고 있다. 우선 성폭력 관련 예방 및 처리 모두를 포괄하는 규정으로서 학칙의 위상을 갖춘 것은 바람직하다. 이에 준해 학내 성희롱·성폭력 상담소에서는 사건 처리뿐만 아니라 확장된 반성폭력운동을 독자적으로 기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것성희롱·성폭력겄이라는 애매하고 번거로운 이름이다. 이는 것성폭력겄으로 개념을 통합하려는 학생측의 의견과 것성폭력은 너무 과격하다겄 는 소심함 및 것법률에서는 성희롱을 쓴다겄는 소박한 학교측의 발상이 지난하게 부딪쳐 온 합작물이다.
사실 이름이 별거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스운 결과물이 여실히 드러내는 성폭력에 대한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반응을 알 수 있다. 것폭력겄과 것희롱겄을 구분하는 그 태도에는 성폭력에 대한 것객관적겄 처리를 목적으로 하는 본부측의 시각이 담겨 있다고 생각된다.
② 성폭력의 범위 및 판단기준
지난 3년간의 반성폭력의 운동의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무엇보다도 것성폭력 개념의 확장 및 피해자중심주의 확립겄이라 평가할 수 있다. 물리적인 성폭력만을 상정하던 협소한 인식에서 언어성폭력, 시선폭력, 집단적 놀이문화에서 나타나는 성폭력, 스토킹, 사이버 성폭력 그리고 여성차별 사안에까지 성폭력이란 이름이 따라붙게 되었다.
서울대의 학칙에서는 성폭력 기준을 것피해자의 성적수치심 및 혐오감겄으로 설명하고 구체적인 성폭력 유형으로 4가지를 제시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학내에서 일어나는 여성차별 행위의 일부분까지 포함하고 있다.
특히 성폭력의 기준을 피해자의 주관적 판단에 놓는 것은 본부측은 물론 학생대중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논란을 낳은바 있는데 이는 피해자를 것과도하게 예민한 여성겄의 모습으로 규정하는 전형적인 편견을 반영하는 반응이었다. 또한 것법적인 중립성과 객관성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부측의 입장은 끝끝내 충돌지점으로 남아 마지막의 상담소 시행세칙 제정 과정에서도 것사건공개겄에 대한 강경한 반대로 나타나게 되었다.
(2) 학생사회의 전략
학칙제정의 초기과정은 권위적인 본부측과의 소모적인 말싸움에 상당한 역량을 소비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애초에 학칙제정의 필요성조차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본부측의 상대로 학칙의 필요성은 물론 그 구체적인 내용과 기준에 대한 합의까지 이끌어내는 것은 엄청난 역량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으며 결과적으로 3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학칙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본부측과의 논의테이블에서 열세에 놓일 수밖에 없는 학생측의 전략은 것학생사회에서의 담론형성을 통한 압력넣기겄였다. 98년의 단대별 학생회칙 및 내규제정을 통한 반성폭력운동 과정과 99년의 것바로지금겄 활동단의 성과는 실제로 본부측의 입장이 변하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98년의 학칙제정활동단이 만들어내는 4000이 넘는 결의서명을 비롯한 다양한 대중적 성과물은 본부측이 학생측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게 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3) 학칙의 내용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지점들
학칙은 무엇보다 그 것적용범위겄(성폭력의 범위, 학칙의 적용대상이 되는 학내구성원의 범위)와 사건에 대한 것처리규정겄을 세심하고 정확하게 규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성폭력의 범위를 가능한 넓게 확장하는 것, 그리고 학칙의 적용대상을 명확히 하여 학내 모든 구성원이 성폭력문제에 대해서는 학칙에 의한 법적 효력을 행사하고 적용받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성폭력 판단기준에 피해자중심주의를 최대한 반영하고, 사건처리과정에서도 피해자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는 일관된 통로를 보장하는 것, 그리고 사건처리 기간중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조치들을 확립하는 것 등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상담소나 기타 관련기구를 만들 때에는 그 조직을 명료하게 구성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서울대의 경우 상담소장과 부소장, 운영위원, 조사위원, 상근자 등으로 상담소의 조직이 구성된다. 운영위원회는 상담소의 운영 및 상담소 시행세칙의 개정 등을 담당하는 기구이며 조사위원회는 실제로 접수된 사건을 처리하는 실무기구이다.
복잡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조사위원의 전문성과 독립성, 그리고 안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학내에서 전문적인 조사위원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외부 전문가를 포함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조사위원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확보하고 일정정도의 경제적 보상을 본부측에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상담소에서 신고를 받고 실무를 담당하는 상근자의 경우 그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한데 가능한 것여성주의적 시각겄 및 것성폭력관련 활동경험겄 등을 상근자의 자질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학교기구의 경우 대부분 석·박사를 기준으로 뽑는 경우가 많은데 기존의 석·박사 범위 내에서 위의 기준을 만족할 수 없는 경우라면 그같은 것객관적겄인 지표를 낮추더라도 실질적인 역량을 갖춘 상근자를 확보하도록 학교측을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4. 상담소의 권한확장 및 독립성 확보
서울대의 경우 여전히 남아있는 과제 중의 하나는 상담소를 학생생활연구소로부터 독립시켜 독자적인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재정과 인력이 부족하다면 상담소는 애초에 목적으로 한 전문적인 사건처리 및 반성폭력 사업 등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게 되는데 이같은 결과는 실제로도 우려되는 지점 중의 하나다.
특히 피해자 상담과 가해자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전문상담자들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도 시급한 일인데 막상 그에 필요한 비용이나 행정적인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애초에 확실한 재정확보와 독립성을 담보로 하는 상담소 개소를 추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기반을 만들어두는 것이 필요하고 동시에 상담소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그같은 합의를 유지시켜 가는 것도 중요하다.
학칙은 학칙일 뿐이다. 반성폭력운동의 제도화과정이 마무리되는 것은 그 어수선한 뒷모습에도 불구하고 반갑다. 이제 새로운 반성폭력운동을 만들어 갈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간 학내 여성운동 진영의 역량이 상당부분 학칙제정으로 집중된 경향을 보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제는 그 부담으로부터 어느정도 벗어나 훨씬 더 급진적이고 자유로운 운동을 만들어갈 수 있는 그리고 그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음을 생각한다.
부디, (분량은 넘겼지만) 짧은 글이 다른 곳의 여성주의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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