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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토닌의 생각 조각들과 기록들 (2007 - 2012)

D-WAR와 노무현, D-WAR와 이명박

by 세로토닌 | 2007년 12월 24일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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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WAR와 노무현, D-WAR와 이명박
마르세리안
그 후의 이야기.
http://www.mediamob.co.kr/machiavell 데우스 엑스 마키나.


나는 D-WAR를 보지 않은 사람이다. 같이 볼 사람도 없었고 원래 괴수영화를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니까 충분히 안 볼 여건을 갖추었고 결국 안 봤다. DVD도 빌려볼 생각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참 D-WAR를 둘러싼 논쟁에서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애시 당초 영화를 안 봤으니 할 얘기가 있었어야지 말이다. 그래서 진중권교수가 심각하게 D-WAR의 문제점에 대해서 열변을 토했을 때 나는 그저 낄낄거리면서 그 토론을 보고만 있었다.


그러던 내가 어 이거 위험하구나. 라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영화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한 진중권교수에 대한 집단 비난이 일어나고서 부터였다. 나는 그 비판이 광기라고 느끼고 있었지만 내 자신이 D-WAR라는 영화를 보지 않은 상황에서는 가타부타 말할 수 없음을 느꼈다. 그래서 일부러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 한 켠은 편치 않았다. 어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위험’은 단지 이 D-WAR라는 영화가 과도한 민족주의나 애국주의 마케팅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과도한 민족주의에 매몰되어 있다고 비판하지만 나는 그 말 자체에 대해서 동의하지는 않는다. 내가 위험하다고 느낀 것은 다른 부분에 있었다.


진중권교수는 D-WAR를 비판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 라는 개념을 끌어들였다. 그리스 철학을 수박 겉핥듯이 배운 나는 이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래서 백과사전을 뒤적였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극의 긴박한 국면을 타개하고, 이를 결말로 이끌어가는 수법.’ 즉 극의 전개과정과는 전혀 상관없는 ‘초월적 존재’가 나타나서 극의 갈등을 해소한다는 극작기법이라고 한다. 더 쉽게 설명하자면 나쁜놈 A와 착한 편 B가 한참 싸우고 있는데 갑자기 벼락이 내리쳐서 나쁜 놈 A가 죽어버린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진중권교수가 이 개념을 D-WAR에 들이댔다는 것은 D-WAR가 이야기의 기승전결이라는 기본적 요소도 망각한 단순한 ‘장면묶음’에 불과한 영화였다는 뜻이다. 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비판에서는 아주 경멸적인 비판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D-WAR를 안 봐서 이 말이 맞는지 안 맞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진중권교수의 비판에 대해서 대중들이 보여준 반응은 실로 놀라울만한 것이었다. 지난번 황우석사태때도 그랬지만 진중권교수에 대한 비난의 핵심은 ‘니가 뭘 안다고 까부느냐.’ 라는 반응이었다. 이를 일컬어서 많은 사람들은 대중지성이 엘리트를 상대로 한 반란이라고 지적했다. 나도 이 말에 동감한다. 진중권교수의 주장이 옳았던 옳지 않았던 간에 그는 분명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엘리트로서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내세운 주장에 대한 이러한 폭력적인 반응은 엘리트의 지적에 대한 반발심리였다. 아니 그 이상이라고 봐야한다. 엘리트의 주장이 옳다 그르다라는 걸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무분별적으로 진중권으로 대표되는 소위 ‘배운 사람’들이 하는 말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 반발하는 것이었다.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애들끼리 싸울 때 항상 하는 말들 ‘그래 나 무식하다. 그러는 너는 얼마나 잘났냐?’ 이런 반발들. 진중권교수에 대한 과도한 반응은 이러한 엘리트에 대한 경멸이었다. 이것이 더 위험했다고 보았다. D-WAR가 기록한 800만이라는 관객 수치도 이러한 문제에서 접근해야 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엘리트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실 엘리트의 말들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진중권교수의 말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닌 것처럼. 이 물음에 대해서 나는 마키아벨리의 해묵은 금언 하나로 답을 대신하고 싶다.

“대중은 언제나 옳은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추상적인 상황에서의 대중의 결정은 옳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에서 대중의 결정은 항상 옳다.”

바로 이 구체적인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 엘리트였다. 대중이 반발했던 것은 그 엘리트들의 발언에 대해서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대중지성이 항상 옳기 위해 전제조건으로 삼아야 할 ‘엘리트의 존재’자체가 부정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D-WAR사태를 보면서 나는 그걸 느꼈고 그래서 위험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분석은 대중이 이렇게 진중권을 ‘까’면서도 반대편에 있는 D-WAR에 대해서도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았던 것에서 증명된다. 내 주위나 인터넷공간에서 D-WAR에 대해 지지를 말하던 많은 사람들도 그래서 D-WAR가 괜찮은 영화냐? 라는 질문에는 대부분이 아니라고 답했다. D-WAR도 괜찮고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를 막가자는 영화, 꼭지가 돌았다라고 비판하는 진중권은 더 싫다. 이런 식이었다. 이것이 D-WAR가 동원한 800만의 본질이었다.


노무현의 원죄


대선이 끝났고 예상대로 이명박이 50%의 지지율에 육박하는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그나마 과반이 안 된 것을 두고 어떤 사람은 국민의 선택, 즉 대중지성이 이명박에 대한 견제심리로 이러한 결과를 발현시켰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건 아무래도 핑계인거 같다. 어찌되었던 간에 범여권이 참패를 당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이러한 ‘참패’를 두고 ‘왜?’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이명박이 과반의 지지를 받은 이유는 무엇이고, 범여권이 과반의 참패를 당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 걸까. 많은 해석이 등장한다. 범여권의 오만함과 분열, 경제실패로 상징되는 국정실패, 한나라당의 절치부심한 공격들. 그리고 보수신문들의 공격들까지. 이 모든 이유가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범여권의 패배를 설명할지 몰라도 이명박이라는 존재에 대패를 당한 이유를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왜냐 그는 ‘보수역사상 가장 최약체의 후보’였기 때문이었다.


누누이 강조한바 있지만 이명박은 단결력 높은 지지층도 없었고, 그 자신의 처지도 그리 대통령 감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행실 또한 좋지 못했다. 단지 이명박이 내세울 수 있는 건 맡겨주시면 잘 하겠다는 ‘다짐’밖에 없었다. 청계천과 버스공영차로 같은 그의 실적이 그 다짐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활용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그 다짐하나로 여기까지 버텨온 걸까.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명박은 노무현 때문에 이겼다. 그리고 이 말속에 숨겨져 있는 함의는 노무현이 경제를 망쳐서 이명박이 이겼다라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대통령이 5년 동안 국정을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경솔과 오만’이었다. 나는 그 비난 속에서 진중권교수를 향했던 온갖 험한 말들이 오버랩된다.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진보개혁세력들의 똑똑함과 그들이 국민들에게 했던 모든 말들은 진중권교수들로 대표되는 ‘엘리트들의 쓴소리’와 별 반 다르지 않다. 아니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거의 똑같다. 그렇다면 노무현대통령이 이렇게 욕을 먹는 이유도 대략 설명되어진다. 사람 미워하는데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지만 노무현대통령이 욕을 먹는 건 진중권교수가 욕을 먹는 것과 똑같다. 엘리트들에 대한 대중들의 반발심리. 나는 노무현대통령이 경제를 망쳐놔서 욕을 먹는다라는 주장이 전적으로 옳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건 일종의 ‘방어심리’이다. 진중권교수에 대한 공격에서 그가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미학자이기 때문에 영화전문가가 아니고, 그래서 그는 D-WAR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했던 논리들과 같이 말이다.


범여권이 대패를 당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단순히 이를 노무현의 원죄로 말한다면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범여권의 대패에서 모든 책임이 노무현에게 가는 것은 아닌 게 이 때문이다. 그들 모두가 오만하고 엘리트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이 ’경멸‘하게된 것이다. 나는 이렇게 본다. 그래서 진중권의 비난이 D-WAR의 800만을 탄생시켰듯 노무현대통령이 말 한마디에 이명박이라는 상처투성이의 ’정치상품‘은 과반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노무현 때문에 이명박이 이겼다는 말이 성립된다.


막상 이명박을 찍은 사람들이 그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것도 나는 이것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 당사자는 아니라고 부인하고 살면서 법을 위반할 만큼 잘못을 저지른 적은 없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 당선자의 흠을 전부다 인식하고 있다. 마치 D-WAR가 잘 만든 영화는 아니라고 사람들이 다들 인정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의 의혹들에 대한 국민들의 경멸은 노무현대통령과 범여권들이 저지른 ‘오만’에 대한 경멸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래서 이명박은 당선되었다. 물론 이 이유만이 이명박의 불가사의한 지지율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내 나름대로의 분석이 그러할 뿐이다. 이 분석 역시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렇지만 이런 내 분석이 맞다면 조금 더 나가보도록 하자.


노무현의 원죄 2


이러한 ‘엘리트에 대한 경멸’의 감정이 노무현정부에 성립하려면 노무현대통령을 비롯한 노무현정부의 구성원들이 진중권교수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엘리트’였다는 가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에 대한 옹호를 몇 마디라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 않은 존재들이었다. 그러니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그 정당성을 차지하더라도 정확한 방향인지도 헷갈리게 된다. 국민의 이 분노에 대한 해석이 다양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노무현대통령은 진중권교수보다는 심형래감독과 정서적으로 닿아있는 사람이다. 심형래 감독도 충무로라는 기성영화권에 계속해서 자신이 피해받아왔음을 공개적으로 여러차례 밝히면서 동정심을 유발시켜서 D-WAR라는 영화를 피해받은 소수자의 마이너리티 영화로 둔갑시켰다. 그것은 일반국민들의 대중적 지지를 얻게 만들었고, 그 영화의 플롯과 상관없이 절대적인 지지층을 양산시켰다. 그 결과가 어떤 흐름을 낳았는지는 나는 앞에서 설명했다. 노무현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계속해서 자신이 피해자였음을 주장하여 국민들에게 정서적으로 호소하면서 동정심을 유발시켰고, 그것으로 자신의 통치를 5년간 이어나가는 자양분으로 삼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두 사람 모두가 기성계층에 피해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아니다. 그들이 그것을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삼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런데 막상 두 사람이 만든 ‘상품’은 그 질이 담보되지 못했다. D-WAR가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듯하다. D-WAR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은 이 영화가 극악의 쓰레기영화냐. 그 정도는 아니다. 라는 논쟁이지 이 영화가 잘 만들어졌는가 아닌가의 논쟁은 아니었다. 평론가들을 공격했던 네티즌들도 D-WAR가 b급 괴수영화이상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었다.

노무현대통령 역시도 정치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그가 보여준 독선과 오만의 태도를 제쳐두더라도 그를 지지해준 진보계열의 많은 지지자들은 통치기간 내내의 ‘신자유주의’ 브레이크에 시달려야했다. 정체불명의 ‘좌파 신자유주의’와 ‘좌측 깜빡이 키고 우회전’ 은 노무현정부의 작품이 심형래감독의 D-WAR와 마찬가지로 철학이 있는 상품이 아니라 장기적 안목 없이 한건주의로 일관한 상품이었다는 걸 이야기해준다. 한미 FTA나 D-WAR의 부라퀴나 별다른 건 없다.


D-WAR나 참여정부의 열렬한 지지자들이 그 내용에 대한 별다른 이해 없이 단지 ‘노무현’이나 ‘심형래’라는 개인에 대한 호의의 감정이 쌓여져서 지지로 이어진다. 소위 ‘노빠’라는 사람들은 ‘노무현’이 하는 행동이 그 예전 그가 기성정치권의 핍박을 받으면서 정의를 추구했던 인물이었기에 지금 하는 행동도 옳고 선이라고 믿으며, 심형래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그가 그 옛날 용가리와 같은 괴수영화를 만들면서 충무로라는 기성영화권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서 지금의 D-WAR는 약간의 하자가 있더라도 지지해줘야 한다고 믿는다. 전자나 후자나 팬클럽의 지지가 상품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다. 뭐 나 역시도 한 동안 그런 적이 있으니까 굳이 부인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내 나이는 비판적 지지를 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렸던 나이였으니까.


단언하자면, 노무현대통령의 통치는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뒤섞일 수밖에 없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뒤섞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그를 반대하는 사람은 노무현대통령의 통치에서 보여지는 오만과 독선에게서 엘리트에 대한 경멸을 읽어내거나, 그의 정치상품 자체에 대해서 신뢰하기 어려워 지지하지 않게 되어 섞여있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의 오만과 독선이 미래를 위한 선견지명이라고 믿고, 동시에 심형래의 D-WAR처럼 피해의식이 약간이라도 보상되어야 하므로 지지한다. 그러한 지지에 있어서 조중동은, 그리고 한나라당은 좋은 방패막이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그를 비난하는 사람의 숫자가 많아져서 패배하게 된다. 노무현의 원죄는 그가 아무것도 되지 못했던 것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다.


최종보루 이명박


이제 사람들은 노무현을 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통치자로서 이명박을 선택했다. 하지만 5년전 노무현에게 걸었던 기대감이 엄청나게 컸던 반면 지금의 이명박에게 사람들이 거는 기대는 그 기대에 비해서 그리 크지 않다. 나는 이것을 D-WAR이후에 영화평론가들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이 폭발했던 것처럼 기성정치권에 대한 무신뢰에서 찾는다. 정치인들중에서 그나마 기대를 걸어볼 만한 존재였던 노무현이 결국 ‘부라퀴’로 판명되면서 사람들은 신뢰할만한 정치세력을 잃었고 결국 그 부라퀴를 상대할 존재로서 ‘이무기’ 이명박을 선택한 것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이러한 현 상태는 극히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대중지성의 선택 자체가 뿌리채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중지성에 대한 신뢰의 종말로 이어지고, 결국 파시즘의 등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1920년대 후반의 독일이 딱 그랬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민당 세력은 1차세계대전이후 장기간 집권했지만 계속된 경제불황으로 사람들의 실망감은 계속해서 추락했고 결국 기성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사람들은 히틀러라는 신진정치인을 선택했다. 나는 이 선택이 독일국민들이 후진성이 있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국민들은 다 이러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를 제어하는 역할이 지도자계급, 즉 엘리트다. 그러므로 히틀러의 등장에서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은 독일국민들도 있겠지만 그의 등장을 방조한, 즉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린 지도층계급들에게 더 크다.


이명박의 등장은 바로 이러한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려가는 우리나라 지도층계급의 산표본이다. 그 어느 때보다 부패와 의혹으로 둘러싸 있는 국가지도자의 등장은 그만큼 국민들이 지도자를 믿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명박의 지지율이 금방 떨어질 것이라고 사람들은 예측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보지는 않는다. 그는 일종의 최후보루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치인의 마지막 ‘신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일반대중의 지성은 그를 왠만하면 물리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 임계점이 넘어가면 폭발하게 된다.


이명박이 가지고 있는 불안요소, 즉 이명박의 원죄는 여기서 파생된다. 나는 그가 가지고 있는 공약이나 실천능력, 그리고 그것이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것보다 그가 실패할 이후의 한국사회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에 대한 예측이 더 두렵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가 실패하면 정말로 허경영이 나라 팔자를 고친다고 대통령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되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게 지금 우리의 대한민국이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 민주주의의 기본요건인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 대중지성은 더 이상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는다. 대중은 언제나 현명하지만, 그 선택이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그 신뢰가 무너져가는 사회로 넘어가고 있다.


나는 D-WAR의 부라퀴보다 이게 더 무섭다. 대중지성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n* 세로토닌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02-12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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