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화반대 _ 서울대 구성원들에게 호소한다!
by 세로토닌 | 2010년 2월 27일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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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서울대 구성원들에게 호소한다.
서울대 법인화를 저지하기 위해 함께 나서자!
우리는 서울대 법인화를 기필코 저지하겠다는 우리의 결의를 다시 한 번 공개적으로 천명하며, 서울대 구성원들이 우리와 함께 서울대 법인화 저지 운동에 함께 나서줄 것을 호소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체계는 전체 대학 중 국립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불과할 정도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사립대학 비중이 높고, 사립대학 학생의 등록금 부담이 국립대학 학생보다 근 두 배에 달하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오늘날 국가가 부담하는 한국의 대학교육 재정은 국내총생산(GDP)의 0.5%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다른 OECD 국가들의 경우, 대학 재정 중 정부지원의 비중이 평균 78%인데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전문대를 포함한 대학 재정 약 20조원 가운데 정부 지원은 고작 23%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런 사실들은 그간 정부가 당연히 떠맡아야 할 고등교육에 대한 공적 책임을 거의 대부분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전가시켜 왔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정부가 이런 사태에 대한 책임을 조금이라도 통감한다면, 지금이라도 고등교육을 위한 재정 지원을 대폭 늘려 무엇보다도 극도로 허약한 고등교육의 토대를 튼튼히 함으로써 고등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우리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체 대학 중 겨우 20% 비중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지금의 국립대학들은 정부가 “대학교육에 대한 공적 책임을 결코 포기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체면 치례용으로 존속시켜온 대학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고등교육의 발전에 요구되는, 날로 증대하는 재정 확충의 책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국립대학들조차 법인화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가 일단 법인화되면 전국 모든 국립대들의 법인화는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이 점에서 서울대 법인화 문제는 단지 서울대만의 문제로 바라볼 수는 없다. 서울대가 법인화되면 이를 발판으로 전국의 모든 국립대학들도 법인화시킬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국의 모든 대학들은 명실 공히 시장경쟁체제로 편입되고 말 것이다.
정부가 법인화 추진의 주요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법인화가 되어야 대학이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대학이 지닌 잠재력과 특성을 살려 마음껏 발전할 수 있는 자율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대 본부 역시 자율성 확보를 법인화 추진의 주요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말하는 자율성이란 사실은 정부가 고등교육에 대한 자신의 공적 책임을 최대한 벗어던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고, “정부지원금보다 더 필요한 재원은 대학들이 알아서 벌라.”는 주문의 다른 표현일 따름이다. 법인화한다고 해서 정부가 지금 현재 부담하는 수준의 정부지원금 총액까지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등교육을 위한 지금의 정부지원 수준이 너무 낮은 반면, 고등교육을 위한 재정확충의 필요성은 날로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국립대 법인화를 추진하는 목적은 고등교육을 위한 정부지원금 총액을 현재보다 더 줄이지는 못할지라도 더 늘리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는 데에 있다. 그 밖에도 정부가 법인화를 추진하는 데에는 그에 못잖은 다른 이유들도 있다. 그것은 개별 대학 차원에서는 재정 지원의 대가로 대학운영에 개입하여 대학이 시장논리에 따라 운영되도록 강제하고, 대학들 간의 관계에서는 대학들을 경쟁관계에 몰아넣어 대학운영 평가에 기초하여 대학들을 차등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정부가 말하는 자율성이란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하다. 그런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는 서울대 법인화를 위한 정부입법안에 규정되어 있는 대학운영계획의 수립과 평가에 대한 조항, 이사회 구성과 권한에 관한 조항, 총장선임에 관한 조항, 감사에 관한 조항 등등을 일별해 보기만 해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서울대 본부에게 묻고자 한다. 법인화가 자율성의 증대를 가져온다는 주장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서울대 법인화를 위한 정부입법안을 보고도 지금도 ‘법인화=자율성의 증대’ 운운할 수 있는가?
서울대 본부는 ‘세계 10위권 대학으로의 진입’이라는 서울대 자체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요구되는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법인화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보기엔 그런 목표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는 서울대 본부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법인화된다고 한들 등록금을 대폭 인상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슨 수로 그런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오늘날 서울대학교는 명색이 국립대학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일일이 거론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등록금 인상이 크게 제한받는 것 말고는 이미 법인화된 대학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이 점은 법인화되기 이전에는 전적으로 국고지원에 의존해 대학을 운영해 왔던 일본의 국립대학들과는 본질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설령 수익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해 돈을 벌려고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벌 돈이 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돈을 벌려고 하다가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게다가 기금을 증권 등에 투자하면 호경기에는 돈을 벌지 모르지만 불경기에는 한꺼번에 다 날려 버릴 수도 있다. 오늘날 미국 대학들이 재정 파산상태에 몰려 직원들을 대량 해고하고, 등록금을 올리는 등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돈을 시장에서 굴리면 굴릴수록 재정의 불안전성도 덩달아 높아진다. 대학의 재정적 불안전성이 높아지는 길을 왜 구태여 택하려고 하는가?
물론 서울대는 국립대 법인화가 가져올 대학들 간의 전면적인 경쟁체제 속에서 정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다른 대학들보다 정부지원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서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법인화를 통해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적 책임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정부로부터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 다른 대학들보다 정부지원을 좀 더 많이 받아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대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줄 것인가? 정부의 대학경영평가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아 이전 같으면 지방 국립대학에게 가야할 몫까지 가로채는 것이 전국 최고의 대학으로 자부하는 서울대가 할 만한 일인가? 서울대가 다른 국립대학들과 함께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지원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점에서 가장 올바른 태도라 할 것이다.
서울대는 다른 대학들 간의 관계를 약육강식의 제로섬 게임(zero-sum game) 관계가 아니라, 윈윈 게임(win-win game) 관계로 만드는 데에 앞장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다른 대학들과 힘을 합쳐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 규모를 늘리려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서울대가 언제 한 번이나 이런 노력을 기울여 본 적이 있는가? 기업의 지원을 받기 위해 총수들을 찾아다니고, 발전기금을 모으기 위해 동창들에게 호소하는 데에 주력하지 않았는가? 서울대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더 타내기 위해 로비는 했어도 고등교육 예산 전체를 늘리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한 적이 있는가? 서울대가 정말 다른 대학들과 함께 공동으로 고등교육 예산 증대를 위해 행동해 왔더라면, 정부의 고등교육 재정 지원 규모는 이미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대되어 왔을 것이다.
법인화가 되면 등록금은 늦든 빠르든 불가피하게 대폭 인상되지 않을 수 없다. 법인화된 국립대학이 등록금을 올리면 사립대학들 역시 덩달아 등록금을 올릴 것이다. 이러한 등록금 인상 러시의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가난한 집안 학생들의 대학 진입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워지고, 이른바 ‘일류대학’들은 갈수록 더 ‘부유층 자제들을 위한 고급인력양성소’로 변질되어 갈 것이다. 법인화를 통해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진입하겠다는 서울대의 꿈은 사실상 서울대를 가난한 집안의 학생일지라도 실력만 있으면 들어오는 ‘국민 모두의 대학’이기를 포기하고 세계 10위권에 드는 ‘부유층 자제들을 위한 고급인력양성소’로 만들겠다는 다부진 의지의 표현일 따름이다.
법인화의 효과는 수익사업을 통해 돈을 잘 벌고 말고를 떠나서 대학으로 하여금 돈벌이를 통한 재정 확충에 목매달도록 만드는 데에 있다. 이처럼 대학이 돈벌이에 몰두하면, 대학의 연구․교육 수행 능력마저도 돈벌이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가를 중심으로 평가된다. 이는 다시 대학의 학문․교육체제를 대학재정 확충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는 응용학문․ 실용학문 중심으로 재편되도록 강제하고, 지금의 국립대학에서마저 기초학문․기초과학기술을 더욱 배제하는 상황으로 귀결시킬 것이다. 기초학문․기초과학기술을 주변적 학문으로 내모는 이런 사태는 사실은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의 모든 대학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더 나아가, 법인화는 기초학문․기초과학기술 역시 돈벌이의 압박 속으로 밀어 넣음으로써 기초학문․기초과학기술의 응용학문화와 실용학문화를 촉진시켜 나갈 것이다. 이런 과정은 결국 비판적 지성을 길러야 하는 학문과 교육의 본연의 목적을 방기하게 만들고, 약육강식의 시장질서에 잘 적응하는 기능적․실용적 지식만을 중시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과정은 동시에 대학이 ‘사회 속의 대학’으로서 떠맡아야 하는 중요한 역할인, 예를 들어 정부 정책이 올바르게 수립되도록 적극 기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잘못된 정부정책 등을 과감하게 비판함으로써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하는 역할을 방기토록 만들 것이다. 대학이 비판적 지성의 전당으로 행해야 하는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사회는 등대 없는 암흑의 바다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배의 신세와 비슷한 처지에 빠지고 말 것이다. 우리가 대학을 지성의 전당으로 가꾸는 데에 소홀하면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한국 사회의 민주와 진보를 위해 헌신했던 선배 교수들과 학생 등에게도 면목이 없다.
법인화가 되면 대학 운영의 주인은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 하에 놓인 이사회가 된다. 게다가 법인화를 위한 정부입법안에는 총장까지도 “외부 인사들이 참여하는 총장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자 중에서 이사회가 선임해 교과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함으로써 그간 대학 자율성을 확보하고, 대학 민주주의를 구현시키는 가장 강력한 제도적 장치였던 총장직선제를 폐기하고, 이사회 지배체제하에서도 마땅히 지켜야 할 ‘협치’(協治) 내지 ‘공치’(共治)의 이념을 실현할 아무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입법안은 교과부장관이 추천하는 1명의 감사를 상근(常勤)으로 한다고까지 규정하고 있다. 정부입법안대로 통과되면 대학 전체가 여러 제도적 장치들이 강제하는 ‘보이지 않는 시장의 논리’에 지배받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대학민주주의조차 질식당하는 사태로 진전될 것이다.
법인화가 되면, 대학은 ‘주식회사 대학’이 되고, 총장은 ‘주식회사 고용사장’과 같은 지위를 지니며, 대학본부 보직자들은 ‘주식회사 고위경영간부’에 준(準)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이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대외적 임무는 정부와 기업 등을 상대로 ‘로비’하는 것이다. 교수들은 더 이상 자유로운 지적 정신의 소유자로서 진리를 탐구하고 가르치는 지성인이 아니라 프로젝트 따내기와 논문 편수 올리기를 위해 정신없이 바삐 움직여야 하는 ‘지식 생산․판매 노동자’이자, 프로젝트 수행량과 논문편수에 의해 그 실적을 평가받는 ‘평가 대상’이 될 것이다. 본봉은 최소수준으로 줄어들 것이고, 현재보다 한층 강화된 성과급제가 도입될 것임에 틀림없다. 최근 정부가 모든 교수들에 대해 이른바 ‘성과연봉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한 것이 그 구체적인 움직임이다. 학생들 역시 서로 경쟁의 상대가 되는 가운데 ‘위를 향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애쓰는 ‘지식권력․지식자본의 예비후보자’로 전락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더 이상 우리 사회를 모든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사는 연대적 민주공동체로 발전시킬 새로운 주체가 되기를 기대하기가 어렵게 된다. 법인화의 결과로 대학들이 시장경쟁체제에 편입되면 ‘효율성 제고’와 ‘경비 절감’이 중심 가치의 하나가 된다. 때문에, 법인화는 ‘비공무원형의 탄력적 인사제도’를 도입시켜 상시적 구조조정 체제를 대학사회에 정착시킬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학당국과 직원이 민주적인 협력적 동반자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직원들은 전면적인 ‘구조 조정의 대상’이 된다. 오늘날 한국의 사립대학에서 나타나다시피, 이런 저런 형태의 비정규직 교수들을 양산하고, 정리해고와 정규직 직원의 비정규직화 등을 촉진시켜 고용 불안정이 증대하고 노동 강도가 강화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또 이렇게 되면, 교수들 간의 관계는 몰론 대학구성원 모두가 서로 잠재적․현실적인 경쟁 상대자들이 되어 우애와 동료 의식 등이 사라진 매우 메마르고 삭막한 관계로 변해갈 것이다.
우리 사회는 물론 시장경제체제에 기반을 둔 사회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 전체를 시장적 관계로 재편되거나 시장적 관계에 종속시키게 되면, 사회의 파괴와 황폐화가 초래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태는 다시 파괴되고 황폐화된 사회의 자기 회복을 위한 운동, 즉 ‘시장에 대한 사회의 복수’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때문에, 시장경제체제의 안정적인 재생산을 위해서라도 시장화․상품화의 파괴적 효과를 상쇄하는 비시장 영역의 창출이 불가피하게 요구된다. 그런 비시장적 영역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가 (의료, 주택, 교통, 물․에너지 등과 더불어) 바로 학문과 교육이다. 그러나 국립대 법인화는 고등교육 공공성 확보의 마지막 보루로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오늘날의 국립대학체제에 최후의 일격을 가함으로써 비시장적 영역으로 남아있어야 할 우리나라 고등교육 전체를 시장의 전일적 지배하에 종속시키고 말 것이다.
이처럼, 법인화는 전사회적 맥락에서도, 개별 대학에 대해서도 거대한 재앙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법인화 시도를 저지해야 하고, 또 그러기 위해서 우선 당장 서울대 법인화를 저지해내야 한다. 서울대 법인화 저지는 누구보다도 우리 자신이 가장 크게 책임을 져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울대 본부에게 지금이라도 서울대 법인화 시도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사실 한국 공교육의 가장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야 할 서울대가 앞장서서 공교육 파괴의 총대를 메고 나서고 있는 것은 참으로 수치스럽고 한심스러운 작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본부가 국회에 ‘수정안’을 제출한 것은 정부입법안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정부입법안에 따른 법인화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라도 공개적으로 천명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기는커녕, “제대로 된 법인화를 추진하겠다.”는 목소리는 이젠 들을 수 없고, 지금은 오직 “법인화만이 살 길이다.”라고 외치는 목소리만이 들려온다. 본부는 언제 그처럼 열렬한 법인화 지지자가 되어 버렸는가? 본부는 법인화안의 마련 과정에서 학내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는 민주적 과정을 밟았다고 말한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주장이다. 본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법인화가 필요하다고 여론몰이만 했지, 법인화에 대한 학내의 심대한 우려를 반영하여 법인화를 반대한 대학구성원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는가? 총장은 본부안을 마련한 후 단과대학들을 순회 방문하면서 법인화가 필요하다고 설득작업만 했을 뿐, 찬반토론이 오가는 진지한 공청회를 단 한 번이라도 개최한 적이 있는가? 교과부안을 마련할 때에도 밀실교섭에만 나섰지 언제 한 번이라도 서울대 구성원에게 교섭의 쟁점들을 사전에 공개한 적이 있는가? ‘대의기구’인 평의원회에 회부해 논의에 부쳐 통과시켰으므로, 민주적 절차를 다 밟았다고 강변할지 모른다. 그런데 공청회 개최는 고사하고, 방청도 허용하지 않고 회의 내용도 공개하지 않는 평의원회가 정말 대의기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믿는가? 우리는 본부가 지금 와서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지라도 법인화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원리를 심대하게 위배했다고 단정한다. 게다가 법인화는 해방 초기 ‘국대안 반대 파동’과 같은 엄청난 희생을 치룬 이후에 성립된 오늘과 같은 대학 거버넌스체제와 교직원의 신분 등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국가로 친다면 ‘헌법 개정’에 준하는 중대 사안이다. 이런 사안은 헌법 개정과 마찬가지로 구성원 2/3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법인화를 꼭 그렇게 추구하고 싶다면,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로비나 벌이고 다니기 전에,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학내 투표에 부쳐 학내 구성원의 2/3 이상의 동의를 구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서울대 교수들에게 호소한다.
우리는, 서울대가 여러 국립대학 중의 하나로 묶여 있는 것이 서울대 발전의 장애물이며, 법인화를 통해 서울대 자체가 지닌 여러 현실적․잠재적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되면 서울대의 재정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져 교수들의 처우도 좋아지고 서울대가 세계 초일류대학 중의 하나로 성장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서울대가 법인화된 대학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미 다 하고 있는 마당에 등록금의 대폭 인상이 없다면 법인화가 서울대의 재정 확충에 얼마만큼 실질적인 도움을 줄지는 의문인 반면, 법인화를 통해 잃게 될 것은 많고 더욱이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들을 너무나 많이 잃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돈벌이를 통한 재정확충은 실현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달콤한 유혹'이긴 하지만, 그 유혹 속에서 서울대는 결국 타락할 수밖에 없고, 서울대의 타락이 가져올 피해는 가늠하기조차도 어려울 만큼 크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 주길 바란다.
나아가 설령 법인화를 통해 서울대가 세계 초일류대학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할지라도, 개체의 합리성이 전체의 합리성을 보장하지 못하듯, 서울대의 발전이 한국 사회와 학문 전체의 바람직한 발전방향과 일치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기는커녕 서울대의 그런 발전은 불가피하게 한국의 학문․교육 전체의 왜곡 및 타 대학과 다수 국민들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기초 위에서 이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법인화의 길은 서울대를 아름답지만 독성을 품은 ‘악의 꽃’ 같은 존재로 만드는 길이며, 서울대가 자신도 그 일부를 이루고 있는 신체의 다른 세포들을 죽이면서 자기만을 증식시키는, 또 그렇기 때문에 결국 자신도 신체와 함께 죽어야 하는 암적 존재가 되는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수들께 간절히 호소하는 것은 우리의 발전이 ‘타 대학과 사회의 발전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우리 서울대의 진로를 모색해 나가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법인화가 현재보다 서울대의 재정 확충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돈벌이’에의 유혹과,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서울대 이기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과 같은 국립대 체제로서는 교수 한 명, 직원 한 명도 대학 자체에서 마음대로 뽑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법인화에 찬성하는 교수님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정도의 권한이란 사실은 현재와 같은 국립대학체제하에서도 대통령시행령만 바꾸면 지금이라도 당장 위임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교과부안에는 포함되어 있었지만 국회에 회부된 정부입법안에서 빠진 조항인 국가지원금의 총액 지급제도 마찬가지이다. 법인화되어야만 그런 권한을 누린다는 주장은 법인화론자들의 거짓 선전이다. 게다가 설령 그 주장이 맞다 할지라도 그런 권한을 누리기 위해 법인화하자는 것은 “쥐잡기 위해 장독을 깨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법인화는 싫지만 ‘대세’이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교수님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대학교육의 시장화․상품화가 이전에는 대세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몰고 온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한 이후에는 전혀 대세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오히려 교육의 시장화․상품화가 불러온 피해를 시정하기 위해 이전에 시장화․상품화시켰던 교육체제를 다시 공교육체제로 되돌리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가 되고 있다. 법인화 시도는 현 시기 세계적 발전 추세에도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시도인 것이다.
우리는, 법인화는 현 정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고 노무현 정부도 추진했던 정책이며, 아무리 반대한들 국회에서 결국 통과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고 미리 체념하는 분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현재의 의원분포를 볼 때 국회 통과를 저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리 체념할 필요는 없다. 의원 분포가 그러하지만 서울대 구성원, 특히 교수들의 반대 목소리가 커질수록 이 목소리를 국회의원들이 그냥 무시하기만은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만큼 강하게 ‘서울대 법인화 반대’를 외칠 수 있는 가에 달려 있다. 우리는 교수들께 법인화 반대 운동에 힘을 보태 줄 것을 호소해 마지않는다.
우리는 서울대 학생들에게 호소한다.
법인화가 늦든 빠르든 가져올 수밖에 없는 등록금 인상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바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부모들이다. 우리는 현재 국립대의 등록금이 사립대보다 낮다고 하지만 학비를 벌기 위해 자신의 아까운 시간을 아르바이트 등에 바치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기숙사 시설이 부족해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자취방과 하숙집을 전전하면서 추가비용을 부담하고 시간들을 허비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사실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가 되려면, 여러분도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무상교육을 받을 권리를 지녀야 한다. 물론 그런 혜택을 누리면 졸업 후 자신의 발전이 사회 전체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활동해야 할 고귀한 의무도 아울러 지니게 된다. 그러나 법인화가 가져올 대학교육의 시장화․상품화는 여러분이 그런 인간으로 발전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우리는 우리 사회가 여러분을 '경쟁의 포로'로 만들어 여러분이 직면한 제반 사회적 문제들을 오직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하도록 강제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사실 교육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고등교육을 전면적으로 시장화․상품화하려는 시도가 노리는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대학을 여러분이 사회성을 지닌 인간으로 무한히 성장해 가도록 돕는 진정한 배움터로서가 아니라,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인간으로, ‘위를 향한 경쟁’에만 몰두하는 이기적 인간으로 주조하는 공장으로 만들려고 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서로 전면적인 경쟁관계를 맺는 사회에서는 부와 부의 획득을 보장하는 권력이 우상으로 격상하고, 다른 모든 인간적․사회적 가치들이 부정되고 파괴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물신의 지배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불행이 그들 자신의 책임으로 외면당하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행복을 누리는 사회로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허망한 것으로 배격당하며, 사회과정에 대한 진지한 지적 성찰과 변혁적 실천 등이 냉소의 대상이 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한 개인의 행복이 다른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고통 위에 선 것이 되어 행복을 누리는 것으로 보이는 인간들을 속물로 타락시키고, 반사회적인 인간일수록 사회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학생을 사회적 인간이 아니라 반사회적인 이기적 인간이 되도록 내모는 대학교육의 최대의 피해자는 학생이며, 또 그러므로 그런 교육을 거부할 힘도 일차적으로는 학생들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학생들이 지닌 때 묻지 않는 순수성과 열정 및 자신을 진정한 사회적 인간으로 발전시키고 싶어 하는 정의감을 믿는다. 법인화 저지운동에의 참여는 대학을 진정한 배움터로 만들고, 정의가 넘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 우리는 학생들이 서울대를 국민 모두의 사랑을 받는 한국 공교육의 보루로 만드는 데에 누구보다 앞장서 줄 것을 요청한다.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 받아 법인화를 반대하고 교육 공공성을 지키는 운동의 주역으로 당당히 나서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서울대 직원들에게 호소한다.
우리는 학문과 교육 등 그 어떤 사회적 활동도 여러분의 노동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여러분의 노동이 없다면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정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여러분의 노동이 소중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대학 운영의 당당한 한 주체이며, 또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주체에 상응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법인화는 여러분의 지위를 주체가 아닌 객체로, 관리의 대상으로,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끊임없이 추락시킬 것이다. 그 결과가 여러분의 개인적․사회적 삶에 어떤 파멸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여러분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법인화 반대 운동은 노동자로서의 여러분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자 여러분의 인격적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운동의 일환이기도 하다. 나아가 여러분은 여러분이 땀 흘려 일하는 여러분의 일터인 서울대가 국민 모두의 대학, 진리의 전당이 아니라 일급 귀족학교로, 최고급 학문․교육 상품 시장터로 전락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안타깝게 생각할 것이다. 여러분의 일터가 그런 대학으로 변한다면, 여러분의 노동에 어떤 보람을 찾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여러분이 서울대 법인화를 반대하고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운동에 헌신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서울대 구성원 전체에게 다시 한 번 호소한다.
정부가 법인화를 추진하는 것은 대학 모두를 시장의 지배 하에 두면서 시장 보호자로서 수렴청정(垂簾聽政)하기 위한 것이며, 서울대 본부가 정부의 주문에 장단 맞춰 법인화 추진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결국 서울대에게도 독약이 될 협소한 서울대 이기주의에 눈멀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울대 구성원들이 서울대가 학문과 교육 전체 및 한국 사회의 발전에 가장 잘 기여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서울대의 발전 진로를 모색할 이성적 판별능력과 옳은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적 양심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울대 구성원들이 우리의 이런 신뢰를 결코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부와 서울대 본부의 시도를 방조하거나 묵인하는 것은 전사회적 관점에서 본다면 서울대가 택할 수 있는 여러 선택 중 최악의 선택을 방조․묵인함을 의미한다. 저항이 요구될 때 저항에 나서지 않는 것은 자유의 포기이며, 권리를 누리는 자가 아니라 예속된 자의 삶을 살겠다고 선언함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서울대 구성원들이 시장 전제정(market despotism)의 노예가 되는 것을 단연코 거부할 것이라고 믿는다.
현재 우리 서울대학교는 중대한 기로에 처해 있다.
법인화는 서울대를, 학문과 교육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대형 사설학원’과 같은 기관으로,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부유층 자제들을 위한 ‘귀족대학 중의 귀족대학’으로 전락시키고 말 것이다. 이런 서울대학교는 권력과 자본에게는 한없이 굽실거리면서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다른 대학들에게는 오만방자한 패자로 군림하는 학문교육 시장의 조폭 두목과 같은 존재이다. 우리는 서울대학교가 그런 대학으로 타락하는 것을 단연코 반대해야 한다. 서울대학교는 내부적으로는 현재의 국립대학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대학의 자율성과 학문의 자유를 더 한층 신장시키고 국민과 사회 전체의 행복 증진에 기여하는 진정한 지성의 전당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과제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교육 공공성 수호의 튼튼한 보루가 되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보편적 교육을 받을 권리를 향유하게 하고, 더 나아가 한국 학문의 자생적 기반을 튼튼히 하는 가운데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균형적 발전, 수도권 대학과 지방 대학, 국립대학과 사립대학 모두의 발전을 선도해 나가는 진정한 호민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법인화에 반대하는 것이 지금 현재의 처지에 안주하려는 입장과는 전혀 다름을 공개적으로 천명한다.
우리 서울대학교가 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그 길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 힘을 합쳐 서울대 법인화 반대 운동에 힘차게 함께 나서자! 우리는 서울대 구성원이 법인화를 저지하기 위한 운동에 적극 참여해 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0년 2월 23일
서울대학교 법인화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서울대학교민주화교수협의회, 서울대학교공무원노동조합, 전국대학노동조합서울대학교지부, 서울대학교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
서울대 구성원들에게 호소한다.
서울대 법인화를 저지하기 위해 함께 나서자!
우리는 서울대 법인화를 기필코 저지하겠다는 우리의 결의를 다시 한 번 공개적으로 천명하며, 서울대 구성원들이 우리와 함께 서울대 법인화 저지 운동에 함께 나서줄 것을 호소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체계는 전체 대학 중 국립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불과할 정도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사립대학 비중이 높고, 사립대학 학생의 등록금 부담이 국립대학 학생보다 근 두 배에 달하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오늘날 국가가 부담하는 한국의 대학교육 재정은 국내총생산(GDP)의 0.5%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다른 OECD 국가들의 경우, 대학 재정 중 정부지원의 비중이 평균 78%인데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전문대를 포함한 대학 재정 약 20조원 가운데 정부 지원은 고작 23%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런 사실들은 그간 정부가 당연히 떠맡아야 할 고등교육에 대한 공적 책임을 거의 대부분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전가시켜 왔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정부가 이런 사태에 대한 책임을 조금이라도 통감한다면, 지금이라도 고등교육을 위한 재정 지원을 대폭 늘려 무엇보다도 극도로 허약한 고등교육의 토대를 튼튼히 함으로써 고등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우리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체 대학 중 겨우 20% 비중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지금의 국립대학들은 정부가 “대학교육에 대한 공적 책임을 결코 포기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체면 치례용으로 존속시켜온 대학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고등교육의 발전에 요구되는, 날로 증대하는 재정 확충의 책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국립대학들조차 법인화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가 일단 법인화되면 전국 모든 국립대들의 법인화는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이 점에서 서울대 법인화 문제는 단지 서울대만의 문제로 바라볼 수는 없다. 서울대가 법인화되면 이를 발판으로 전국의 모든 국립대학들도 법인화시킬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국의 모든 대학들은 명실 공히 시장경쟁체제로 편입되고 말 것이다.
정부가 법인화 추진의 주요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법인화가 되어야 대학이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대학이 지닌 잠재력과 특성을 살려 마음껏 발전할 수 있는 자율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서울대 본부 역시 자율성 확보를 법인화 추진의 주요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말하는 자율성이란 사실은 정부가 고등교육에 대한 자신의 공적 책임을 최대한 벗어던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고, “정부지원금보다 더 필요한 재원은 대학들이 알아서 벌라.”는 주문의 다른 표현일 따름이다. 법인화한다고 해서 정부가 지금 현재 부담하는 수준의 정부지원금 총액까지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등교육을 위한 지금의 정부지원 수준이 너무 낮은 반면, 고등교육을 위한 재정확충의 필요성은 날로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국립대 법인화를 추진하는 목적은 고등교육을 위한 정부지원금 총액을 현재보다 더 줄이지는 못할지라도 더 늘리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는 데에 있다. 그 밖에도 정부가 법인화를 추진하는 데에는 그에 못잖은 다른 이유들도 있다. 그것은 개별 대학 차원에서는 재정 지원의 대가로 대학운영에 개입하여 대학이 시장논리에 따라 운영되도록 강제하고, 대학들 간의 관계에서는 대학들을 경쟁관계에 몰아넣어 대학운영 평가에 기초하여 대학들을 차등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정부가 말하는 자율성이란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하다. 그런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는 서울대 법인화를 위한 정부입법안에 규정되어 있는 대학운영계획의 수립과 평가에 대한 조항, 이사회 구성과 권한에 관한 조항, 총장선임에 관한 조항, 감사에 관한 조항 등등을 일별해 보기만 해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서울대 본부에게 묻고자 한다. 법인화가 자율성의 증대를 가져온다는 주장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서울대 법인화를 위한 정부입법안을 보고도 지금도 ‘법인화=자율성의 증대’ 운운할 수 있는가?
서울대 본부는 ‘세계 10위권 대학으로의 진입’이라는 서울대 자체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요구되는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법인화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보기엔 그런 목표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는 서울대 본부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법인화된다고 한들 등록금을 대폭 인상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슨 수로 그런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오늘날 서울대학교는 명색이 국립대학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일일이 거론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등록금 인상이 크게 제한받는 것 말고는 이미 법인화된 대학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이 점은 법인화되기 이전에는 전적으로 국고지원에 의존해 대학을 운영해 왔던 일본의 국립대학들과는 본질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설령 수익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해 돈을 벌려고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벌 돈이 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돈을 벌려고 하다가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게다가 기금을 증권 등에 투자하면 호경기에는 돈을 벌지 모르지만 불경기에는 한꺼번에 다 날려 버릴 수도 있다. 오늘날 미국 대학들이 재정 파산상태에 몰려 직원들을 대량 해고하고, 등록금을 올리는 등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돈을 시장에서 굴리면 굴릴수록 재정의 불안전성도 덩달아 높아진다. 대학의 재정적 불안전성이 높아지는 길을 왜 구태여 택하려고 하는가?
물론 서울대는 국립대 법인화가 가져올 대학들 간의 전면적인 경쟁체제 속에서 정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다른 대학들보다 정부지원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서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법인화를 통해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적 책임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정부로부터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 다른 대학들보다 정부지원을 좀 더 많이 받아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대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줄 것인가? 정부의 대학경영평가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아 이전 같으면 지방 국립대학에게 가야할 몫까지 가로채는 것이 전국 최고의 대학으로 자부하는 서울대가 할 만한 일인가? 서울대가 다른 국립대학들과 함께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지원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점에서 가장 올바른 태도라 할 것이다.
서울대는 다른 대학들 간의 관계를 약육강식의 제로섬 게임(zero-sum game) 관계가 아니라, 윈윈 게임(win-win game) 관계로 만드는 데에 앞장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다른 대학들과 힘을 합쳐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 규모를 늘리려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서울대가 언제 한 번이나 이런 노력을 기울여 본 적이 있는가? 기업의 지원을 받기 위해 총수들을 찾아다니고, 발전기금을 모으기 위해 동창들에게 호소하는 데에 주력하지 않았는가? 서울대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더 타내기 위해 로비는 했어도 고등교육 예산 전체를 늘리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한 적이 있는가? 서울대가 정말 다른 대학들과 함께 공동으로 고등교육 예산 증대를 위해 행동해 왔더라면, 정부의 고등교육 재정 지원 규모는 이미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대되어 왔을 것이다.
법인화가 되면 등록금은 늦든 빠르든 불가피하게 대폭 인상되지 않을 수 없다. 법인화된 국립대학이 등록금을 올리면 사립대학들 역시 덩달아 등록금을 올릴 것이다. 이러한 등록금 인상 러시의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가난한 집안 학생들의 대학 진입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워지고, 이른바 ‘일류대학’들은 갈수록 더 ‘부유층 자제들을 위한 고급인력양성소’로 변질되어 갈 것이다. 법인화를 통해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진입하겠다는 서울대의 꿈은 사실상 서울대를 가난한 집안의 학생일지라도 실력만 있으면 들어오는 ‘국민 모두의 대학’이기를 포기하고 세계 10위권에 드는 ‘부유층 자제들을 위한 고급인력양성소’로 만들겠다는 다부진 의지의 표현일 따름이다.
법인화의 효과는 수익사업을 통해 돈을 잘 벌고 말고를 떠나서 대학으로 하여금 돈벌이를 통한 재정 확충에 목매달도록 만드는 데에 있다. 이처럼 대학이 돈벌이에 몰두하면, 대학의 연구․교육 수행 능력마저도 돈벌이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가를 중심으로 평가된다. 이는 다시 대학의 학문․교육체제를 대학재정 확충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는 응용학문․ 실용학문 중심으로 재편되도록 강제하고, 지금의 국립대학에서마저 기초학문․기초과학기술을 더욱 배제하는 상황으로 귀결시킬 것이다. 기초학문․기초과학기술을 주변적 학문으로 내모는 이런 사태는 사실은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의 모든 대학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더 나아가, 법인화는 기초학문․기초과학기술 역시 돈벌이의 압박 속으로 밀어 넣음으로써 기초학문․기초과학기술의 응용학문화와 실용학문화를 촉진시켜 나갈 것이다. 이런 과정은 결국 비판적 지성을 길러야 하는 학문과 교육의 본연의 목적을 방기하게 만들고, 약육강식의 시장질서에 잘 적응하는 기능적․실용적 지식만을 중시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과정은 동시에 대학이 ‘사회 속의 대학’으로서 떠맡아야 하는 중요한 역할인, 예를 들어 정부 정책이 올바르게 수립되도록 적극 기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잘못된 정부정책 등을 과감하게 비판함으로써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하는 역할을 방기토록 만들 것이다. 대학이 비판적 지성의 전당으로 행해야 하는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사회는 등대 없는 암흑의 바다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배의 신세와 비슷한 처지에 빠지고 말 것이다. 우리가 대학을 지성의 전당으로 가꾸는 데에 소홀하면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한국 사회의 민주와 진보를 위해 헌신했던 선배 교수들과 학생 등에게도 면목이 없다.
법인화가 되면 대학 운영의 주인은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 하에 놓인 이사회가 된다. 게다가 법인화를 위한 정부입법안에는 총장까지도 “외부 인사들이 참여하는 총장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자 중에서 이사회가 선임해 교과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함으로써 그간 대학 자율성을 확보하고, 대학 민주주의를 구현시키는 가장 강력한 제도적 장치였던 총장직선제를 폐기하고, 이사회 지배체제하에서도 마땅히 지켜야 할 ‘협치’(協治) 내지 ‘공치’(共治)의 이념을 실현할 아무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입법안은 교과부장관이 추천하는 1명의 감사를 상근(常勤)으로 한다고까지 규정하고 있다. 정부입법안대로 통과되면 대학 전체가 여러 제도적 장치들이 강제하는 ‘보이지 않는 시장의 논리’에 지배받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대학민주주의조차 질식당하는 사태로 진전될 것이다.
법인화가 되면, 대학은 ‘주식회사 대학’이 되고, 총장은 ‘주식회사 고용사장’과 같은 지위를 지니며, 대학본부 보직자들은 ‘주식회사 고위경영간부’에 준(準)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이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대외적 임무는 정부와 기업 등을 상대로 ‘로비’하는 것이다. 교수들은 더 이상 자유로운 지적 정신의 소유자로서 진리를 탐구하고 가르치는 지성인이 아니라 프로젝트 따내기와 논문 편수 올리기를 위해 정신없이 바삐 움직여야 하는 ‘지식 생산․판매 노동자’이자, 프로젝트 수행량과 논문편수에 의해 그 실적을 평가받는 ‘평가 대상’이 될 것이다. 본봉은 최소수준으로 줄어들 것이고, 현재보다 한층 강화된 성과급제가 도입될 것임에 틀림없다. 최근 정부가 모든 교수들에 대해 이른바 ‘성과연봉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한 것이 그 구체적인 움직임이다. 학생들 역시 서로 경쟁의 상대가 되는 가운데 ‘위를 향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애쓰는 ‘지식권력․지식자본의 예비후보자’로 전락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더 이상 우리 사회를 모든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사는 연대적 민주공동체로 발전시킬 새로운 주체가 되기를 기대하기가 어렵게 된다. 법인화의 결과로 대학들이 시장경쟁체제에 편입되면 ‘효율성 제고’와 ‘경비 절감’이 중심 가치의 하나가 된다. 때문에, 법인화는 ‘비공무원형의 탄력적 인사제도’를 도입시켜 상시적 구조조정 체제를 대학사회에 정착시킬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학당국과 직원이 민주적인 협력적 동반자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직원들은 전면적인 ‘구조 조정의 대상’이 된다. 오늘날 한국의 사립대학에서 나타나다시피, 이런 저런 형태의 비정규직 교수들을 양산하고, 정리해고와 정규직 직원의 비정규직화 등을 촉진시켜 고용 불안정이 증대하고 노동 강도가 강화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또 이렇게 되면, 교수들 간의 관계는 몰론 대학구성원 모두가 서로 잠재적․현실적인 경쟁 상대자들이 되어 우애와 동료 의식 등이 사라진 매우 메마르고 삭막한 관계로 변해갈 것이다.
우리 사회는 물론 시장경제체제에 기반을 둔 사회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 전체를 시장적 관계로 재편되거나 시장적 관계에 종속시키게 되면, 사회의 파괴와 황폐화가 초래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태는 다시 파괴되고 황폐화된 사회의 자기 회복을 위한 운동, 즉 ‘시장에 대한 사회의 복수’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때문에, 시장경제체제의 안정적인 재생산을 위해서라도 시장화․상품화의 파괴적 효과를 상쇄하는 비시장 영역의 창출이 불가피하게 요구된다. 그런 비시장적 영역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가 (의료, 주택, 교통, 물․에너지 등과 더불어) 바로 학문과 교육이다. 그러나 국립대 법인화는 고등교육 공공성 확보의 마지막 보루로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오늘날의 국립대학체제에 최후의 일격을 가함으로써 비시장적 영역으로 남아있어야 할 우리나라 고등교육 전체를 시장의 전일적 지배하에 종속시키고 말 것이다.
이처럼, 법인화는 전사회적 맥락에서도, 개별 대학에 대해서도 거대한 재앙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법인화 시도를 저지해야 하고, 또 그러기 위해서 우선 당장 서울대 법인화를 저지해내야 한다. 서울대 법인화 저지는 누구보다도 우리 자신이 가장 크게 책임을 져야 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울대 본부에게 지금이라도 서울대 법인화 시도를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사실 한국 공교육의 가장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야 할 서울대가 앞장서서 공교육 파괴의 총대를 메고 나서고 있는 것은 참으로 수치스럽고 한심스러운 작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본부가 국회에 ‘수정안’을 제출한 것은 정부입법안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정부입법안에 따른 법인화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이라도 공개적으로 천명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기는커녕, “제대로 된 법인화를 추진하겠다.”는 목소리는 이젠 들을 수 없고, 지금은 오직 “법인화만이 살 길이다.”라고 외치는 목소리만이 들려온다. 본부는 언제 그처럼 열렬한 법인화 지지자가 되어 버렸는가? 본부는 법인화안의 마련 과정에서 학내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는 민주적 과정을 밟았다고 말한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주장이다. 본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법인화가 필요하다고 여론몰이만 했지, 법인화에 대한 학내의 심대한 우려를 반영하여 법인화를 반대한 대학구성원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는가? 총장은 본부안을 마련한 후 단과대학들을 순회 방문하면서 법인화가 필요하다고 설득작업만 했을 뿐, 찬반토론이 오가는 진지한 공청회를 단 한 번이라도 개최한 적이 있는가? 교과부안을 마련할 때에도 밀실교섭에만 나섰지 언제 한 번이라도 서울대 구성원에게 교섭의 쟁점들을 사전에 공개한 적이 있는가? ‘대의기구’인 평의원회에 회부해 논의에 부쳐 통과시켰으므로, 민주적 절차를 다 밟았다고 강변할지 모른다. 그런데 공청회 개최는 고사하고, 방청도 허용하지 않고 회의 내용도 공개하지 않는 평의원회가 정말 대의기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믿는가? 우리는 본부가 지금 와서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지라도 법인화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원리를 심대하게 위배했다고 단정한다. 게다가 법인화는 해방 초기 ‘국대안 반대 파동’과 같은 엄청난 희생을 치룬 이후에 성립된 오늘과 같은 대학 거버넌스체제와 교직원의 신분 등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국가로 친다면 ‘헌법 개정’에 준하는 중대 사안이다. 이런 사안은 헌법 개정과 마찬가지로 구성원 2/3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법인화를 꼭 그렇게 추구하고 싶다면,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로비나 벌이고 다니기 전에,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학내 투표에 부쳐 학내 구성원의 2/3 이상의 동의를 구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서울대 교수들에게 호소한다.
우리는, 서울대가 여러 국립대학 중의 하나로 묶여 있는 것이 서울대 발전의 장애물이며, 법인화를 통해 서울대 자체가 지닌 여러 현실적․잠재적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되면 서울대의 재정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져 교수들의 처우도 좋아지고 서울대가 세계 초일류대학 중의 하나로 성장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서울대가 법인화된 대학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미 다 하고 있는 마당에 등록금의 대폭 인상이 없다면 법인화가 서울대의 재정 확충에 얼마만큼 실질적인 도움을 줄지는 의문인 반면, 법인화를 통해 잃게 될 것은 많고 더욱이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들을 너무나 많이 잃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돈벌이를 통한 재정확충은 실현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달콤한 유혹'이긴 하지만, 그 유혹 속에서 서울대는 결국 타락할 수밖에 없고, 서울대의 타락이 가져올 피해는 가늠하기조차도 어려울 만큼 크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 주길 바란다.
나아가 설령 법인화를 통해 서울대가 세계 초일류대학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할지라도, 개체의 합리성이 전체의 합리성을 보장하지 못하듯, 서울대의 발전이 한국 사회와 학문 전체의 바람직한 발전방향과 일치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기는커녕 서울대의 그런 발전은 불가피하게 한국의 학문․교육 전체의 왜곡 및 타 대학과 다수 국민들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기초 위에서 이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법인화의 길은 서울대를 아름답지만 독성을 품은 ‘악의 꽃’ 같은 존재로 만드는 길이며, 서울대가 자신도 그 일부를 이루고 있는 신체의 다른 세포들을 죽이면서 자기만을 증식시키는, 또 그렇기 때문에 결국 자신도 신체와 함께 죽어야 하는 암적 존재가 되는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수들께 간절히 호소하는 것은 우리의 발전이 ‘타 대학과 사회의 발전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우리 서울대의 진로를 모색해 나가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법인화가 현재보다 서울대의 재정 확충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돈벌이’에의 유혹과,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서울대 이기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과 같은 국립대 체제로서는 교수 한 명, 직원 한 명도 대학 자체에서 마음대로 뽑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법인화에 찬성하는 교수님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정도의 권한이란 사실은 현재와 같은 국립대학체제하에서도 대통령시행령만 바꾸면 지금이라도 당장 위임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교과부안에는 포함되어 있었지만 국회에 회부된 정부입법안에서 빠진 조항인 국가지원금의 총액 지급제도 마찬가지이다. 법인화되어야만 그런 권한을 누린다는 주장은 법인화론자들의 거짓 선전이다. 게다가 설령 그 주장이 맞다 할지라도 그런 권한을 누리기 위해 법인화하자는 것은 “쥐잡기 위해 장독을 깨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법인화는 싫지만 ‘대세’이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교수님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대학교육의 시장화․상품화가 이전에는 대세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몰고 온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한 이후에는 전혀 대세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오히려 교육의 시장화․상품화가 불러온 피해를 시정하기 위해 이전에 시장화․상품화시켰던 교육체제를 다시 공교육체제로 되돌리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가 되고 있다. 법인화 시도는 현 시기 세계적 발전 추세에도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시도인 것이다.
우리는, 법인화는 현 정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고 노무현 정부도 추진했던 정책이며, 아무리 반대한들 국회에서 결국 통과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고 미리 체념하는 분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현재의 의원분포를 볼 때 국회 통과를 저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리 체념할 필요는 없다. 의원 분포가 그러하지만 서울대 구성원, 특히 교수들의 반대 목소리가 커질수록 이 목소리를 국회의원들이 그냥 무시하기만은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만큼 강하게 ‘서울대 법인화 반대’를 외칠 수 있는 가에 달려 있다. 우리는 교수들께 법인화 반대 운동에 힘을 보태 줄 것을 호소해 마지않는다.
우리는 서울대 학생들에게 호소한다.
법인화가 늦든 빠르든 가져올 수밖에 없는 등록금 인상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바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부모들이다. 우리는 현재 국립대의 등록금이 사립대보다 낮다고 하지만 학비를 벌기 위해 자신의 아까운 시간을 아르바이트 등에 바치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기숙사 시설이 부족해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자취방과 하숙집을 전전하면서 추가비용을 부담하고 시간들을 허비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사실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가 되려면, 여러분도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무상교육을 받을 권리를 지녀야 한다. 물론 그런 혜택을 누리면 졸업 후 자신의 발전이 사회 전체의 발전에 기여하도록 활동해야 할 고귀한 의무도 아울러 지니게 된다. 그러나 법인화가 가져올 대학교육의 시장화․상품화는 여러분이 그런 인간으로 발전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우리는 우리 사회가 여러분을 '경쟁의 포로'로 만들어 여러분이 직면한 제반 사회적 문제들을 오직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하도록 강제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사실 교육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고등교육을 전면적으로 시장화․상품화하려는 시도가 노리는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대학을 여러분이 사회성을 지닌 인간으로 무한히 성장해 가도록 돕는 진정한 배움터로서가 아니라,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인간으로, ‘위를 향한 경쟁’에만 몰두하는 이기적 인간으로 주조하는 공장으로 만들려고 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서로 전면적인 경쟁관계를 맺는 사회에서는 부와 부의 획득을 보장하는 권력이 우상으로 격상하고, 다른 모든 인간적․사회적 가치들이 부정되고 파괴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물신의 지배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불행이 그들 자신의 책임으로 외면당하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행복을 누리는 사회로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허망한 것으로 배격당하며, 사회과정에 대한 진지한 지적 성찰과 변혁적 실천 등이 냉소의 대상이 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한 개인의 행복이 다른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고통 위에 선 것이 되어 행복을 누리는 것으로 보이는 인간들을 속물로 타락시키고, 반사회적인 인간일수록 사회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학생을 사회적 인간이 아니라 반사회적인 이기적 인간이 되도록 내모는 대학교육의 최대의 피해자는 학생이며, 또 그러므로 그런 교육을 거부할 힘도 일차적으로는 학생들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학생들이 지닌 때 묻지 않는 순수성과 열정 및 자신을 진정한 사회적 인간으로 발전시키고 싶어 하는 정의감을 믿는다. 법인화 저지운동에의 참여는 대학을 진정한 배움터로 만들고, 정의가 넘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 우리는 학생들이 서울대를 국민 모두의 사랑을 받는 한국 공교육의 보루로 만드는 데에 누구보다 앞장서 줄 것을 요청한다.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 받아 법인화를 반대하고 교육 공공성을 지키는 운동의 주역으로 당당히 나서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서울대 직원들에게 호소한다.
우리는 학문과 교육 등 그 어떤 사회적 활동도 여러분의 노동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여러분의 노동이 없다면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정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여러분의 노동이 소중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대학 운영의 당당한 한 주체이며, 또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주체에 상응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법인화는 여러분의 지위를 주체가 아닌 객체로, 관리의 대상으로,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끊임없이 추락시킬 것이다. 그 결과가 여러분의 개인적․사회적 삶에 어떤 파멸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여러분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법인화 반대 운동은 노동자로서의 여러분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자 여러분의 인격적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운동의 일환이기도 하다. 나아가 여러분은 여러분이 땀 흘려 일하는 여러분의 일터인 서울대가 국민 모두의 대학, 진리의 전당이 아니라 일급 귀족학교로, 최고급 학문․교육 상품 시장터로 전락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안타깝게 생각할 것이다. 여러분의 일터가 그런 대학으로 변한다면, 여러분의 노동에 어떤 보람을 찾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여러분이 서울대 법인화를 반대하고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운동에 헌신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서울대 구성원 전체에게 다시 한 번 호소한다.
정부가 법인화를 추진하는 것은 대학 모두를 시장의 지배 하에 두면서 시장 보호자로서 수렴청정(垂簾聽政)하기 위한 것이며, 서울대 본부가 정부의 주문에 장단 맞춰 법인화 추진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결국 서울대에게도 독약이 될 협소한 서울대 이기주의에 눈멀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울대 구성원들이 서울대가 학문과 교육 전체 및 한국 사회의 발전에 가장 잘 기여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서울대의 발전 진로를 모색할 이성적 판별능력과 옳은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적 양심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울대 구성원들이 우리의 이런 신뢰를 결코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부와 서울대 본부의 시도를 방조하거나 묵인하는 것은 전사회적 관점에서 본다면 서울대가 택할 수 있는 여러 선택 중 최악의 선택을 방조․묵인함을 의미한다. 저항이 요구될 때 저항에 나서지 않는 것은 자유의 포기이며, 권리를 누리는 자가 아니라 예속된 자의 삶을 살겠다고 선언함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서울대 구성원들이 시장 전제정(market despotism)의 노예가 되는 것을 단연코 거부할 것이라고 믿는다.
현재 우리 서울대학교는 중대한 기로에 처해 있다.
법인화는 서울대를, 학문과 교육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대형 사설학원’과 같은 기관으로,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부유층 자제들을 위한 ‘귀족대학 중의 귀족대학’으로 전락시키고 말 것이다. 이런 서울대학교는 권력과 자본에게는 한없이 굽실거리면서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다른 대학들에게는 오만방자한 패자로 군림하는 학문교육 시장의 조폭 두목과 같은 존재이다. 우리는 서울대학교가 그런 대학으로 타락하는 것을 단연코 반대해야 한다. 서울대학교는 내부적으로는 현재의 국립대학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대학의 자율성과 학문의 자유를 더 한층 신장시키고 국민과 사회 전체의 행복 증진에 기여하는 진정한 지성의 전당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과제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교육 공공성 수호의 튼튼한 보루가 되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보편적 교육을 받을 권리를 향유하게 하고, 더 나아가 한국 학문의 자생적 기반을 튼튼히 하는 가운데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균형적 발전, 수도권 대학과 지방 대학, 국립대학과 사립대학 모두의 발전을 선도해 나가는 진정한 호민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법인화에 반대하는 것이 지금 현재의 처지에 안주하려는 입장과는 전혀 다름을 공개적으로 천명한다.
우리 서울대학교가 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그 길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 힘을 합쳐 서울대 법인화 반대 운동에 힘차게 함께 나서자! 우리는 서울대 구성원이 법인화를 저지하기 위한 운동에 적극 참여해 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0년 2월 23일
서울대학교 법인화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서울대학교민주화교수협의회, 서울대학교공무원노동조합, 전국대학노동조합서울대학교지부, 서울대학교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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