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otonin Paper

세로토닌의 생각 조각들과 기록들 (2007 - 2012)

꿈 그리고 환상

by 세로토닌 | 2006년 12월 11일 16:41
조회 83 댓글 0
꿈 그리고 환상 | 시대유감   2005/12/07 20:24  


http://blog.naver.com/minajin/130000134651


너무나 협소한 분야에서 많은 것을 말하고 싶어한 글이라 부분부분 연결이 잘 안 된다.

넘쳐나는 인내와 관용으로 용서해주시길. :)



2006년, 18년을 맘 편하게 살아온 나에게도 드디어 고등학교 3학년, 대한민국 모든 인문계 고등학생들이 맞게 된다는 행복한 해가 다가왔다. 고3, 고3. 고등학교 2학년 한 해 동안 별 생각 없이 사느라, 내가 18살이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은 채 설문조사지에서 나이를 17살이라고 써넣을 정도로 잊고 살아왔는데, 이 해가 또 나에게 새삼스레 다가올 것은 무엇일까. 내가 가질 부담들마저 그들이 부담스러워하도록 나는 방관하고 있을 뿐이다.



잊고 살았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것을 잊고 살았다. 밟을 때 나는 뽀드득 거리는 소리를 좋아했던 그 눈을 잊은 것도, 해가 시작될 때마다 남쪽의 해가 잘 뜬다는 어느 고장에 가서 하룻밤을 지새우고, 처음 보는 아이들과 게임을 하고, 구름 속에서 미적미적거리는 해의 눈부신 빛살을 바라보고, 또 그 새벽에는 두근두근대며 내 인생을, 내 꿈을 작은 수첩 안 한가득 써 놓았던 때가 도대체 언제였는지 까마득하도록 잊고 있었다. 내게 연필과 종이는 꿈을 그리는, 꿈을 써 내는 마법의 지팡이와도 같았다. 빈 종이와 수첩 그리고 예쁜 펜은 내가 무언가를 그리고 적고 싶게 만드는 존재였다.

나도 꿈이 있었다. 분명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남들도 풋, 하고 웃음이 나올, 그런 꿈을 꿨었다. 물론 어떻게 하면 '가능'한 꿈을 꿨다. 꿈이 세일러문은 아니었으니까. 몇 살 때에는 어떤 학교에 가서 뭘 공부하고, 몇 살 때에는 박사 학위를 따서 어떤 곳에서 일을 하고, 몇 살 때에는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도 하고, 그런 걸 적었다. 즐겁게, 이렇게 살면 분명 멋지겠지.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왔다. 어쩌면 그것도 꿈꾸던 것들 중의 하나. 나는 학교가 좋았다. 뭔가 기대하게 만드는 분위기 속에서 꿈을 꾸던 그대로 공부를 했고 또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점점 내게 여유라는 달콤함은 어디에선가부터 새어나가기 시작했다.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무언가 해야 할 것을 어딘가에 적었다. 내가 꿈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은 적어져만 갔다. 때로는 그것이 타인에 의해서였지만 또 때로는 나 자신에 의해서이기도 했다. 학교 앞에서 하나 둘 받아놓은 연습장은 언젠가 수학 문제를 거기에 풀 날이 있겠지, 하고 책상 한 구석에 치워두고, 공부를 할 때마다 연필이 딴 생각을 종이 위에 그려낼 때 내가 가차없이 지워버릴 수 있게 만든 것은 도대체 무엇의 장난이었을까.



글쎄다.  그렇게 꿈을 부정하기 시작한 건 내가 1학년 때 어떤 선생님께서 수업의 첫 시작으로 꿈에 대한 강연을 해 주셨던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인생의 목표는 의사, 외교관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이루어내는 일을 하는 것으로 해야 한다고. 자신의 신념이 뭔지 분명히 하고, 그에 맞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고. 물론 나 역시도 그런 피상적인 직업에게 꿈을 두고 살아왔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는 밝은 길, 즐거워 보이는 길을 쫓아왔고 어느 정도는 그 길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신념이 뭘까, 하고 고민했다. 즐겁게 사는 것?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너무 속물적이잖아. 편하게, 안정적으로, 좋게 살면 그만이잖아. 하는 생각들은 내 안에서 뭉게뭉게 피어올라왔다.



그렇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옳지 않아. 라는 말이 내 안에서 몰래 조금씩 들려왔다. 모든 사람이 편하게 살기를 원하고, 즐겁게 살기를 원한다. 내 어렸을 적 꿈도 그런 식으로 사는 삶, 정말 누구나가 다 부러워할 만큼의 커리어를 쌓고, 그런 식으로 살고, 그런 만큼 엄청난 여유를 가지는 삶을 살고 싶어했던 게 어린 시절의 나였었는데. 글쎄다. 이쯤 와서는 이 두 주제는 약간 어긋난 방향을 보인다. 어리고 순수했던 나는 즐겁게,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그렇게 많이 써왔던 데에 비해서, 지금의 나는, 다른 많은 이들이 택하는,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그런 삶을 향해 가고 있었다. 분명 내 안의 또다른 누군가는 그저 침묵하고 그들의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내가 꿈을 의심하고 있었을 때 즈음, 그런 신념 같은 것이 없다면, 차라리 꿈을 만들어.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내 방황 속에서 그저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을 만들어 내 앞에 보여주었고, 나는 빙긋 웃으며 그 길로 따라왔다. 그러나 다시 방황의 길로 들어선 지금 그 환상이 만들어 주었던 이정표는 내 앞에 있지 않았다. 아무 것도 나를 인도해 주지 않았다.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랬다. 어쩌면 내가 따라왔던 꿈들은 모두 환상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모든 이들의 꿈이 환상이 아닐까? 어떤 인생의 이야기는 어떤 사람들에게 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음 속에서 그것을 환상으로 만들어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환상이 현실에서 한번씩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은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환상은 어쩌면 마음의 안경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환상에 불과한 것, 그들이 방황할 때, 그들이 그 환상이라는 이름의 안경을 벗고 고민하고 있을 때 환상은 그 어느 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환상을 벗겨냈을 때 나에게 닥쳐온 공황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아무것도 내 눈을, 내 마음을 막을 수는 없어, 하는 생각으로 내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환상들을 벗겨냈을 때, 나는 시력을 잃고 비틀거렸다. 모든 것이 흐릿했다. 어디에도 안주할 수 없었다. 세상은 비틀려 보이기만 했다. 내 앞에 그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은 없었다. 나는 그런 공황감을 돌려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논리로 나를 설득했지만, 그 설득마저도 또 다른 마음에 의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마련이었다. 전혀 소득 없는 논쟁과 싸움이 내 마음 속에서 매일 오갔다. 그리고 그 상태는 꽤나 오래 지속되었다. 사실 지금까지도 그렇다. 나는 그 어느 것도 믿지 못한다. 심지어 내가 무엇을 하고 싶다는 그런 감정마저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도, 아주 원초적인 것부터 나는 의심한다. 나는 한 번 내 꿈을 의심했고, 힘들게 환상의 안경을 벗었지만, 그 것이 이런 식으로 나 자신을 의심해가면서 어느 정도까지 갈 지는 나로써도 예상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사실 지금, 나는 내 마음 속에서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린 상태이다. 내가 이 글에서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지금 내가 또다른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다. 그 꿈은 내가 예전에 말도 안 될 것만 같은 이야기를 내 수첩에 두근거리며 적을 때처럼 말이 안 될 수도 있겠다. 불가능하다고 쉽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내가 환상의 안경을 모두 벗어버리면서까지 찾고 싶었던 것은 내 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그것은 이제 내 안의 누군가를 자극하는 일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신문에서 보았던 어느 과학자의 말이 생각이 난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에서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나는 새로운 꿈을 꾼다. 그리고 나에게 최면을 걸기 위해 또다른 환상의 안경을 쓴다. 언젠가는 또 그것을 벗고 한번쯤 비틀거릴 때가 있겠지. 그 어느 누구도 쉽게 갈 수는 없는 길이 현실이니까, 모두가 환상으로 최면을 걸고 걸어가는 길이니까, 하면서 또 다른 환상의 안경을 쓰게 되겠지. 그렇지만 좀 더 의미있는 환상을, 좀 더 기분좋은 환상을 꿈꿀 수 있도록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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