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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토닌의 생각 조각들과 기록들 (2007 - 2012)

인문계 학생의 과학책 읽기

by 세로토닌 | 2006년 12월 11일 16:48
조회 98 댓글 0
인문계 학생의 과학책 읽기 | 시대유감   2005/08/05 23:54  


http://blog.naver.com/minajin/120016046347




뜬금없이 문과생(인문계라고도 하지요)이 무슨 과학책이냐, 하는 생각을 하실 겁니다. 그게 7차의 통념이고, 우리나라의 왜곡된 선택과 집중 교육의 모습입니다. 적어도 제 주변의 사람들은, 저와 같은 7차 교육과정 속에서 수능을 봤거나 볼 사람들은 많이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진로 선택을 할 때, 많은 7차 교육과정의 학생들은 상당한 수준의 딜레마에 부딪치게 됩니다. 자신이 인문계와 자연계 중 자신이 좋아하는 하나를 택하면 그 밖의 모든 것은 그 이후로 '차단' 되기 때문이죠. 그것도 아주 교묘한 방식의 차단입니다. 법적으로는 '균형된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 일정 부분의 다른 계열 과목을 수강하게 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의 생사가 달려있는 수능에서 절대 만날 일이 없다는 점에서 하나, 그나마 성적이 반영되는 내신의 변별력이 대입 전형에서 아주 형편없는 시국이라는 점에서 두 개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학생들은 자신이 수강하고 싶은 과목들만 수강할 수 있고, 자신에게 익숙해서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시험에 나오기 때문에 더 좋아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를 비롯한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은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계열이동의 유혹과 많은 고민들 속에서 부표처럼 떠다니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우리들을 더 괴롭게 하는 건 이렇게 이분법적인 제도가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차지원이 가능한 학과는 계속 줄고 있다는 겁니다. 참 합리적인 방식이죠.



좀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요? 요즘 관심있는 분야가 그렇고 그렇다 보니, 사상가들의 생애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철학이니, 사상이니 하는 지극히 문과적인 분야에서 활약한 이들의 학력은 7차에 젖어 있는 우리의 눈으로 보기엔 상당히 당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대학 4년동안 화학이나 수학, 물리학 등을 전공하다가 (심지어 어린 나이에 정교수까지 지내신 분들도 계시죠) 갑자기 철학의 세계로 돌아와서 엄청난 거물이 되는 그분들의 생애들은 우리에게 '이것이 바로 천재의 인생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 지인들 중에서도 철학에 지대한 관심을 갖다가는 나중에 이공계 전공을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러면 또 우리 문과생들이 혼란에 빠지게 되는거죠. 저기에서 성공하려면 대학은 이과를 나와야 하나.(하하)



가지를 하나 더 쳐 볼게요. 중학교 때 저는 과학책을 좋아했습니다. 「엘러건트 유니버스」나, 「시간의 역사」같은 책도, 다 읽지는 못했지만 호기심에 빌려와서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는 시간 나는 대로 책을 읽으려고 많이 노력했었는데, 소설책 같은 것도 가끔 읽긴 했지만 역시 도서관에서나 서점에서나 손에 잡히던 건 꼭 과학이나 수학에 관련된 책들이었습니다. 하나 둘씩 사서 열심히 보던 과학동아는 중2때부터 구독하기 시작해서 아직도 보고 있구요. 뭐, 순수한 시절이라 계열 선택에 관한 문제는 제쳐놓고 살았지만, 그 때 전 제가 고등학교에 가서는 자연계로 진학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 지금 인문계에 있습니다. 자연계 쪽 과목이 좋긴 하지만 미래와 진로가 너무 막연하다는 이유로 사회과학 쪽으로 넘어온거죠. 그때 전 심리학자가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과학은 취미로 하기로 제 자신과 합의를 봤구요. 그런데, 그 후로 전 변했습니다. 변해야 했지요. 과학책을 일부러 '줄이게' 된 겁니다. 마치 담배나 무슨 중독성 물질을 끊는 것 같이 말이죠. 인문계에서의 저는 대입에서 필수적인 논술을 준비해야 했고, 논술을 위해서는 과학책보다는 인문계인의 교양을 길러주는 문학책이 더 필요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서 읽는 것이 아니니 자연히 결과가 좋을 리가 없습니다. 제가 문학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건 비평과 분석밖엔 없었습니다. 독서토론을 하게 되면서 문학을 좋아하는 친구가 자신이 '즐긴'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 들을 때면 그런 가치를 모르는 내가 스스로 부끄러워지기까지 했습니다.



뭐, 그래도 1학년 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만족했습니다. 이제 과학 과목은 한 과목밖에 배울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리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책을 더 읽으면 되었으니까요. 지금 생물 배우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경제와 법과사회도 처음엔 원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마음에 들어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쉬운 게 있다면, 아이들의 의식입니다. 생물을 배우지 않아도 되는 과목이라고 생각하는 몇몇 아이들이 생물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저를 보는 시선들은 그리 곱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문과는 생물이나 물리를 잘 몰라도 되고, 이과는 경제나 법을 많이 몰라도 상관없다는 다분히 7차교육과정적인 사고방식. 수업시간에 윤리 선생님이 하신 말이 생각납니다. 선생님은 거의 모든 방면의 지식에 해박하신 분이신데, 그 때 우주에서의 적색편이를 예로 들면서 어떤 개념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는 '우린 문과에요' 하며 원성하는 아이들에게 그러셨습니다. 7차 교육과정이 애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고. 이제는 퀴즈 대회에 나가도 "이 문제는 이과 문제입니다" 라며 고등학교 때 이과였던 사람만이 푸는 문제가 나와야 될 거라고 우스갯소리를 덧붙이셨는데, 글쎄요, 가벼운 이야기로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문제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이 이분법의 극과 극을 이루는 철학과 자연과학은 사실 떼낼래야 뗄 수 없는 사이입니다. 초기 철학에서 탐구하던 주제들은, 지금 현대 과학이 모두 설명하고 있거나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 세기 전만 해도 철학자와 과학자는 구분되지 않았지만 근대에 들어와서야 그 경계가 생기고 학문이 자세하고 구체적이어진 거죠. 서로 탐구하는 대상은 다르지만 그 방법과 틀은 같습니다. 문과와 이과는 그저 편의를 위해 그 대상에 따라 구분해 놓은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이것을 아예 근본적인 구분으로 취급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과학책 이야기의 끝을 맺어볼까요. 이 글을 구상했던 어제 밤 1시 40분쯤에(^^) 아까 올렸던 사진도 생각해 보고,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하면서, 내가 과연 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 또 다른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제는 과학책을 마음놓고 보고 싶은 대로 보자구요. 지금도 시간이 없어서 많이 못 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단지 필요에 의해서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덮어놓고 읽고 싶지 않은 책들 속에서 사는 건, 이분적 구조를 비판하면서도 실은 그 안에 이미 들어가 있는 내 모습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택과 집중도 선택의 범위와 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사회인, 교양인으로서의 기초를 닦는 고등학교에서부터 전공이 아닌 분야의 학문은 차단된다면, 아무리 전공 과목을 잘 해도 실제 응용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학문들의 다양한 교류와 결합이 필수적이며 그에 학문의 존폐 문제마저 달린 현대 사회에서, 7차 교육과정은 아주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제가 고등학교에서 보낼 시간은 이제 겨우 일년 남짓입니다. 제 후배들은, 조금 기수가 먼 후배들이 될지라도, 이런 식의 사고방식과 시대착오적 정책 속에서 만들어지는 허수아비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램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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