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otonin Paper

세로토닌의 생각 조각들과 기록들 (2007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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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토닌 | 2008년 9월 13일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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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9월 2주차 칼럼)

2008년 09월 06일 (토) 18:56:59 신형철 간사  poetica7@snu.ac.kr  


본토에서조차 웃음거리가 돼버린 배트맨 시리즈를 되살린 것은 영국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1970∼)이었다. 그는 배트맨의 기원으로 되돌아간 ‘배트맨 비긴즈’(2005)를 만든다. 엉성한 초반부를 제외하면 꽤나 볼만한 영화였지만 주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문법에서 시원스레 벗어났다고 하기는 어렵다. 기원으로 돌아간 영화답게 감독은 ‘고담시(Gotham市)’라는 명칭의 기원이 되는 구약 창세기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플롯으로 재활용한다. 타락한 소돔을 멸망시키려는 신에게 정의로운 자 10명을 찾아낼 테니 계획을 철회해 달라고 호소한 아브라함처럼, 악의 도시 고담을 독가스로 멸망시키겠다는 자가당착적인 악당들에 맞서 배트맨은 도시를 지킨다. 공동체 내부의 계급갈등을 외부의 적에게 투사하고 있으니 갈데없는 주류의 시각이다.
최근 개봉된 후속편 ‘다크나이트’(2008)는 확실히 전편을 넘어선다. 물론 최고의 갑부가 세상을 구원한다는 설정은 계급정치학의 측면에서 여전히 수상쩍고, 자신의 허망한 죽음을 통해 남성들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간접적인 방식으로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여성 캐릭터의 모습도 성정치학의 관점에서 아쉬움을 남기지만, 전편에서 두드러지지 않았던 윤리적 상상력 덕분에 영화는 육중해진다. 이 영화에서 악은 그 무슨 독가스 같은 외부의 타자가 아니다. 조커가 희대의 악당인 것은 개인과 공동체의 윤리적 내파(內破)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폭탄이 장착된 두 척의 배가 있다. 자정이 되면 둘 다 폭발한다. 그 전에 다른 배를 먼저 폭발시키는 배는 살아남을 수 있다. 같이 죽느니 저쪽을 먼저 죽이는 게 어떤가. 살고 싶으면 악인이 되라고 선동하는 조커는 걸어 다니는 윤리학적 딜레마다.
어설픈 영화 평론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농토, 라틴어, 가톨릭으로 무장했던 중세의 귀족들이 부동산, 영어, 기독교라는 새로운 성삼위일체를 등에 업고 신자유주의 귀족으로 거듭난 이 새로운 중세에, 그 한줌의 귀족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처해 있는 윤리적 딜레마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우리는 두 배에 나눠 타고 있는가. 80일이 넘게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는 기륭전자 노동자들, 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KTX-새마을호 여승무원들과 도루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다른 쪽 배에 타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죽지 않으려면 저들이 죽어야 하나. 신부님과 스님들이 그들과 연대하기 위해 오체투지 순례를 떠났다는 소식이다. 그 고통과 고독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한 배를 타고 있다고 감히 적지 못한다. 다만 외람된 마음의 오체투지나마 다짐해 보는 것이다. 그들은 망각되는 순간 죽을 터이니, 잊지 말자고 못난 문장 몇 개나마 적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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