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과 해탈의 차이는?
스누라이프 댓글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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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응부경전 23:1 魔. (한역동본, 잡아함경 6:10 마) 중에서
붓다와 제자 라다의 대화를 옮겨본다
"대덕이시여, '마(魔), 마.'라고 흔히들 말합니다만, 무엇을 마라고 합니까?"
"라다여, 색이 있으면, 마,파괴자,죽음이 있느니라. 라다여, 그러므로 색을 마라고 관(觀)하고, 파괴자라 관하고, 죽음이라 관하고, 병이라 관하고…(중략)…이와 같이 관하면 그것을 바른 관찰이라 하느니라.'
청년 라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묻는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엇을 위해서 바른 관찰(觀)을 해야하는 것입니까?
"라다여, 그것은 싫어하여 떠나기 위해서니라."
"…(중략)무엇을 위해 싫어하여 떠나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욕(離慾)을 위함이니라"/"…무엇을 위해 욕망을 떠나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해탈을 위해서니라." / "그러면 무엇을 위해 해탈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열반을 위해서니라."
-상응부경전 中-
쉽게말해 해탈은 '얽매임에서 벗어남'을 말한다면, 열반은 '얽매임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합니다.
열반은 팔리어 닙바나,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의 중국 역경자들이 음사하여 부르는 것인데, 본디 닙바나-니르바나의 뜻은 '연소의 소멸'을 뜻합니다. '연소'는 -상응부경전35:28-붓다의 설법 중에서 등장하는 말인데 이는 탐욕의 불, 노여움의 불, 어리석음의 불에 의해 일체가 탐을 의미합니다. 붓다의 가르침의 궁극적 목적은 욕망의 격정을 없앰으로서 더이상 탈 것이 남아있지 않은 연소의 소멸, 즉 '열반'의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덧. '어느 종교'에서는 '우리 종교의 신을 믿으면 신께서 원하는 것을 주실 것입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할 지도 모릅니다. 혹은 '기도'라는 수단을 통해 신에게 색(물질적인 것)을 욕망하는 바람을 내비치고 이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희망하는 종교신자들도 있습니다. 가령, 이번 사업 번창하여 잘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불교에서는 그렇게 색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붓다의 가르침에 반하는 행위로 보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절대적인 선을 합리적 이성의 추구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불교에 이런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어불성설일 수는 있지만, 쾌락, 재산,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절대선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에서 멀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댓글 1
오오~~ 쿠와아아아앙.. 심오한 글이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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